‘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차라리 겨울이 낫습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의 열가지 스무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케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 여름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 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이것은 옆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면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중의 형벌입니다.’

가만히 있어도 흥건한 땀방울이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여름. 하루종일 달구어진 한낮의 열기는 밤이 되어서도 좀처럼 식을줄 몰랐다. 연대야란 녀석은 늦은 밤까지 눈을 벌겋게 충열시키며 긴~긴밤을 지새웠고 그와 더불어 나도 밤을 꼴딱꼴딱 새워야만 했다. 옆사람의 인열을 느끼며 잠자리에 누울때면 옆 전우가 그렇게도 미웠다. 모로 누워도 칼잠을 자야만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사람을 단지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하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한여름밤  ‘감옥으로 부터의 사색’ 표지 첫 글귀는 나의 온 몸이 찌릿할 만큼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책에 나와있는 표현을 빌리자면 나는 감옥에 갖힌 그의 애절한 상황을 동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공감하고 있었다. (동정심과 공감은 그 근본적인 출발점을 달리하고 있다. 동정심은 객관적으로 문제의 핵심을 흐리고 상대방의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자기 양심의 차책을 위무하려는 도피주의의 한계를 지니고 있다면 공감은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진실한 시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적극적인 자세의 발로(=공감)에 힘입어 나는 긴 여름밤의 고문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란 책을 통해 구원받았다

책 한권이 모두 편지 형식으로 되어있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신영복의 20년 동안의 옥살이를 그리고 있었다. 책의 대부분은 날씨에 관련된 기술이어서 읽다보면 조금 지루할 수도 있지만 수많은 사람들과의 만남과 그로부터 얻어진 통찰력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란 책의 튼튼한 밑거름이 되어 그 깊이를 한층 깊게 만들고 있었다. 

신영복은 통일혁명당 사건을 계기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인물이었다.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하는 것 만큼 억울한 일이 또 있을가? 하물며 그 형벌 또한 무기징역이란다. 기다림이 배제된 무기징역은 차라리 죽는 것만 못한 절망적인 형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형선고를 받은 사형수들은 죽는 날이라도 기다리며 하루를 살아가지만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사람은 기다릴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다림이 살해되는 그 순간부터 무엇인가를 참고 견디어내야 하는 (인생을 버티어낼) 근거는 증발해버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주어진 현실앞에서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매일 매일 똑같은 하루를 살면서 꾸준이 편지를 쓰고, 주변 사람들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워나갔다. 실천이 결여된 사고는 발전을 거듭해갈 수 없었지만 신영복은 과거라는 새로운 목발을 집고 전진의 한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여기 애벌레를 통한 그의 사색을 통해 그 깊은 사유를 살짝 살펴보자. ‘애벌레들은 소조를 잡아먹는 포식자의 눈을 그들의 몸에 새김으로써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한다.  같은 맥락에서 몸에 문신을 한 사람들도 사회의 거대한 매커니즘 속에서 지구의 자전처럼 인간이 느낄 수 없는 힘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남으려고 노력한다. 종이 호랑이만도 못한 서투른 문신은 이들의 보호색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문신을 새기며 비툴어진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마저 애절하게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참으로 놀랍고 경탄스러웠다.  

눈이 많이 내린 어느 날, 그는 다리가 있어도 걷지 못하는 자신을 한탄했다. 두다리가 있어도 걸을 수 없는 슬픔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절대로 알 수 없는 것이었다. 내가 이런 그의 마음을 공감한다고 말하면 그는 말도 아니된다고 하겠지만 주제넘게도 나는 그를 조금은 이해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그의 답답함을 감히 상상하여 보았고 나의 보잘것 없는 답답함을 그 속에 이입해 보기도 하였다. 군에서 2년동안(슈가를 나감에도 불구하고)이 이렇게 힘든데 옥살이의 20년은 아마도 몇백배는 괴로웠을 것이다. 변하는 것은 오직 날씨뿐인 상황에서 편지 내용이 온통 날씨에 관련된 것으로 채워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의 힘겨운 옥살이는 고작 400 페이지에 다 담길 수 없는 묵직한 것이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순간 나는 만족할 수 없는 가벼움이 온몸 구석구석에 퍼지는 것을 느꼈다.아마도 그의 명문장을 전부 공감하고 있지는 못해서 이기 때문일 것이다. 

답답함의 긴 터널을 지나고 있는 지금 ‘감옥으로 부터의 사색’이 나에게 던져준 것은 실로 대단스러운 것이었다. 내일의 슈가만을 기다리고 있는 내 모습을 반성하며, 마지막으로 그의 명문장을 곱씹어본다.

“사랑은 생활을 통해 익어가는 것이다”

수많은 세월을 함께 해온 가족으로 인해, 내 옆에서 오늘을 사는 친구로 인해, 20년을 살아온 나의 人生으로 인해, 내 사랑도 더욱 향기롭게 익어가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2007.7.9

감옥으로 부터의 사색을 읽고 시작된 군대로부터의 사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