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입인사] 알몸  
이병 이승진   2009-04-29 09:42:54, 조회: 201, 추천:0 

4. 한 '문단'으로 스스로를 소개해 주시길 바랍니다. 당신이라는 사람을 보여주기에 한 문단은 긴 것이 아니겠죠? (단, 공지사항에 나와있듯이 문제가 될 수 있는 표현들은 피해주시길 부탁드려요. 물론, 입주 신청서를 내기 전에 공지사항은 꼭 읽어보셨겠죠?)


구령에 발을 맞추며 적지 않은 무리가 큰 소리를 내던 곳이 있었습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소리에 맞추어 귀를 열고 경건하게 소리나는 곳을 향하던 곳이 있었습니다. 어느 하나라도 착오 없이-낙오라고도 표현합니다만- 모든 제품이 ‘정상’을 위해 노력하고 나사라도 하나 빠질라치면 어김없이 무언의 철퇴를 가하는 곳이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향기에 몇 번의 질식 충동. 거대한 것, 숭고한 것에 대한 불신과 회의감, 거부감.

그 공간에서의 매일매일은 이따위 생각이 나를 둘러싼 대기에 무겁게 짓눌러 왔습니다.어느 날, 아마도 일요일 어느 오후에 나는 가슴에 파란 딱지를 달고 건물 옆 양달에서 나부끼는 빨래들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힘없이 나부끼는 얼룩덜룩 똑같이 생긴 옷들, 백색 솟옷들은 나를 슬프게 만듭디다. 어느 하나 다를 것 없이 똑같은 모습으로 한때 그것들이 인간의 가죽이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가슴팍에는 얄브레한 글씨같은 것들이 조금씩 다른 모양으로 박혀있었습니다. - 그것이 무엇이라고. 나는 그 순간 덮쳐오는 엄청난 무력감에 당황했습니다. 마치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알몸이 된 듯 주위는 춥고 사지는 떨려왔습니다. 이승진. 내 가슴팍에도 그런 조그만 게 써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남은 건 내 몸뚱아리 뿐. 어떠한 의미도 지니지 못한 채, 그저 그런 이름이 있었다는 걸 이 작은 묘비는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나의 파편들은 허공으로 날아갔습니다. 나를 덮고 있던, 나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발가벗겨지고, 마침내 이 공허한 공간에서 저는 스스로를, 추위에 떨고 있는 앙상한 저 자신을 직면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이런 좋은 날이 언제 또 올까 생각했습니다. 항상 도피해왔지만, 이제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서야 고통을 직면할 용기가 조금은 생겼습니다. 

‘인식’하고 싶습니다. 더 이상 어떤 것으로 도피하지 않고, 나 자신을 뿌리로 삼아 계속적으로 더욱 견고하게 수많은 ‘나’를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짧은 시간일지도 모르겠지만, 쉬지않고 악을 썼습니다. 입을 벌려댔습니다. 이 진공의 공간에서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나는 세계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세계가 나를 불렀습니다.

저는 사람과 이야기하기를 좋아합니다. 시장의 파리떼들, 들개들과 더불어 이야기하지 않고 지껄이는 것도 곧잘 하는 편이기는 하지만, 영혼을 그런 식으로 소모하는 데에 언제나 깊은 회의와 좌절을 느낍니다. 어느 때인가, 죽은 이들이 나를 방문할 때가 있습니다. 그들은 한때 진정으로 인간이었던, 이야기 할 수 있는 자-그리고 언제까지나 이야기하고 있는-입니다. 

사람이 그리운 때입니다. 누구도 곁에 없어서-만져진다고 해서 모든 것이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외로울 때 나는 언제나 죽은 자와 대화했습니다. 이 외로움 속에서 나는 나 자신에 대한 어떤 희미한 실마리를 찾았지만, 그 희미함이 점차 실선을 이루어 나갈수록, 나는 나 자신을 또 어디론가 전달하고만 싶어집니다. 에리히 프롬의 이야기를 이루는 핵심적인 요소, 사도 마조히즘적 심리의 발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과거에 타인에게 완전히 일체화 되는 경험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부족한 자아와 성찰에 대한 두려움으로 행복하게 함몰되어 있었던 시절이었지요. 무서우리만큼 행복한 감정이었지만, 머리 없는 거인을 탄생시키는 이러한 심리적 매카니즘을 충분히 반성하면서, 나는 다시 소통을 시작해 봅니다. 나를 부르는 세계와. 

먼저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순서를 어긴 게 못마땅하실지 모르겠지만, 사실 여러 질문에 이 글 하나로도 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래에는 포말하게 적어 둡니다.


1. 광활하게 펼쳐진 인트라넷의 세계엔 책마을 말고도 다양한 공간들이 있습니다. 그 공간들 중에서 책마을이라는 곳으로 입주하게 된 것에는 무언가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왜 책마을에 찾아 들어오게 되었나요? 그리고 책마을에 입주 신청을 낸 이유는 무엇인가요? 의례적이고 상투적인 문구가 아닌, 당신의 솔직한 진심을 듣고 싶습니다.누군가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으로,

어딘가에서 들려올 목소리를 애타게 찾고 있을 무렵-실제로는 독서사랑의 글 나부랭이들을 읽고 있었습니다-어떤 글을 보고 생각했습니다.이 사람은 나를 부르고 있는 거라고. 그래서 지체하지 않고 메일을 보냈습니다. 답장에는 책마을 주소가 적혀있었고요. 그게 제 시작입니다. ‘나’ 밖에있는 수많은 ‘나’ 들을 발견하는 것.

2. '책마을'에 입주를 선택한 당신에겐, '책'에 대한 유별난 마음씀씀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에게 있어 '책'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당신의 삶은 '책'을 통해서 어떻게 변해 왔는지 듣고 싶습니다. 책과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책은 말씀입니다. 적극적인 대화입니다. 죽은 자와 산 자가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
새삼스레 ‘나’가 책을 통해 어찌 변해왔는지를 설명하자면, 그것은 참으로 내가 밥을 오늘 얼마나 먹고 몇 kg이 늘어났는지를 말하는 보잘 것 없는 것입니다. 소유할 수 없이 다시 배설하고 마는 양식인 동시에 또 보이지 않는 피와 살이 되겠죠.

3. "당신이 어떤 책을 읽어왔는지 말해주면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줄 수 있다. 당신의 독서목록은 그 자체로 당신의 자서전이고 영혼의 연대기이다."(김경욱, 「위험한 독서」) 당신이 읽은 책은 곧 당신을 말해줍니다. 당신이 읽어온 책들이 궁금합니다. 당신이 인상 깊게 읽었던 책들 중 딱 세 권만 보여주세요. 세 권의 책들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우리에게 이야기 해주세요.

특기학교로 넘어간 후 짧은 외박 기간 동안, 두 권의 책을 사왔습니다.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 궁안에서 읽기에 가장 적합한 첫걸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향기로운 집단의 규정할 수 없는 취기를 상세히 설명하기에 충분했습니다.-물론 그렇게 극단적으로 해석하지 마라고 반박 당할지도 모릅니다만은, 미미한 것과 극단적인 것이 본질적으로 다르다라고도 말할 수 없으니까요. 쇼펜하우어 인생론은 마음껏 비웃으며 읽었습니다. 책이 말씀이라고, 적극적인 대화라고 말씀 드린 까닭은 다름아닌 여기에 있습니다. 비록 한 권의 책이 나오기에는 오랜 사고와 고통의 과정이 필요했겠지만, 편협한 시대정신의 죽은 이를 마음껏 비웃고 비판하는 것 또한 독자의 몫 아니겠습니까.-왜냐하면 우리는 분명 다른 사람이니까요. 타인을 통해서 나를 더욱 단단한 덩어리로 만드는 것이 책을 읽는 목적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자대 배정후 신병대기소에서 몰래 도서관에 들렀습니다. 세 번째 책은 김연수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입니다. 청승맞게 눈물을 떨구었더랬지요. 기억나지는 않습니다. 내용같은 건. 시나리오를 위한 시나리오는 그저 시나리오에 불과한 법. 눈물과 함께 나는 그저 내용은 잊어버린 채 가슴속에 뭔가 응어리지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디테일은 생략하겠습니다. 


5. 당신이 생각하는 책마을은 어떤 모습인지, 당신이 책마을에서 무엇을 만나고 싶은지 이야기해주세요. 

수많은 ‘나’들. 타자로서 인식하지 않고 또하나의 나로 존중할 수 있는 사람들.
경계를 허무는 자들. 이야기하되 지껄이지 않는 자들. 함께 눈물 흘릴 수 있는 이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10
13:53:23 

 

병장 김범수 
  나는 단수가 아니라 복수인 건가요. 꼭 다른 '나'를 발견하셨으면 좋겠네요. 2009-04-29
09:47:43
  

 

이병 이승진 
  병장 김범수 / 말하자면 우리가 단수고 '나'는 어떤 조각이라고 해야할까요. 2009-04-29
10:09:55
  

 

상병 진수유 
  반갑습니다. 2009-04-29
10:55:19
  

 

일병 김태건 
  어서오세요. 2009-04-29
11:02:00
  

 

일병 최정현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