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입인사] 기생중인 생물의, 기생계획서.
병장 고승철 [Homepage] 2009-03-23 16:49:44, 조회: 164, 추천:2
1. 광활하게 펼쳐진 인트라넷의 세계엔 책마을 말고도 다양한 공간들이 있습니다. 그 공간들 중에서 책마을이라는 곳으로 입주하게 된 것에는 무언가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왜 책마을에 찾아 들어오게 되었나요? 그리고 책마을에 입주 신청을 낸 이유는 무엇인가요? 의례적이고 상투적인 문구가 아닌, 당신의 솔직한 진심을 듣고 싶습니다.
어렸을 때 였을껍니다. 밥벌어먹기 바쁜 장사꾼의 아들로 태어났다는걸 안건... 그 바쁨에도 부모님은 넘치는 사랑을 주셨고 그 당시에는 그 사랑이 누구나에게나 그 만큼인줄 알았고 거기에 만족했었습니다. 그러다 그 어린 애기가 초등학교를 들어가고 집안의 바쁨은 전혀 바뀌지 않았습니다. 유치원도 없이 학교에 들어간 그 아이는 그 때부터 장사꾼의 손님이 아닌 주변의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친구들 그리고 친구의 가정들 그렇게 남들과는 다르게 쓸쓸히 자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건 아마 그쯤 이었을 거에요(어려서 부모님의 기억이 없는걸 보니...그저 절 사랑해 줬다고 생각만 나는걸 보니....). 그런 사실을 안건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래서 그 공허한 마음을 그 어린 아인 그저 남의 이야기를 열심히 듣는 것으로 채우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자신의 마음이 아닌 남의 마음을 듣기위해 노력하며 오로지 듣기위해서 그 아이는 살아오고 있었습니다. 21년을 살면서 그 사실이 자신을 힘들게 하진 않았습니다. 대학에 와서도 서로 말하기 바쁜 사람들은 그저 잘 들어주는 저에게 고맙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전 그게 착하게 잘 사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려서부터 꿈이 착한 사람이 되자 였으니까요. 그러다가 궁에 들어온 기간이 1년이 되기전 그렇게 잘 듣기만 하던 저에겐 그게 힘듬으로 다가왔네요. 후배 녀석들에게 따끔한 말을 못하는게 그저 그녀석들의 말을 들어주기만 하는게 그렇게 무능력한 모습으로 비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그 때부턴 화를 내는 방법도 그리고 내 마음의 말을 하는 방법도 연습하고 있어요. 물론 지금도... 아마 그쯤이었을 꺼에요. 선배가 책마을을 하고 있는걸 본게 그러고 나서 몰래 가입을 해보고 글을 읽기 시작한게 큰 죄악마냥 저를 힘들게 했네요. 자신있게 자신의 마음을 적어내는 분들은 그저 사악한 사람들로만 보였을 만큼요. 그러고 나서는 이곳에 적히는 주 이야기인 책에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전에도 책을 전혀 안읽은건 아니었습니다. 정말 읽지 않는 동료들보다는 조금은 더 읽는 편이었습니다. 여자친구가 책을 많이 좋아해서 자꾸 보내줘서요. 읽지 않았다고 하면 뾰루퉁해지기에 읽고 말을 해줘야했거든요.) 정말 무지했던 모든 것들에 한동안 큰 슬픔이 찾아왔었습니다. 궁 생활에서도 한번도 찾아오지 않았던 우울한 기간이. 얼마전 그 우울함을 이제 끝내기로 마음을 먹고 이제야 가입인사를 써 보네요...
잡솔이 너무 길어지네요. 확 줄여서. 이곳을 지키시던 분들의 소리가 좋았습니다. 평생을 듣고만 살던 저에게 누군가가 말해주는 공간이 있다는건 너무나 큰 행복이었지만 자신이 말을 못하는게 슬프다는 현실을 가르쳐준데 더 큰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책이라곤 전공책만 볼지도 몰랐던 이공계사람입니다. 물론 이공계에 대해서도 아는게 없지만. 이젠 듣기만 해서는 다 알지 못할 것 같아서 대놓고 입주 신청하고 떠들어 보고 그 놀이판에 끼어보고 싶어서 한쪽 다릴 걸쳐봅니다. 물론 글을 쓸줄 몰라서 텍스트를 열심히 생산하겠단 말은 못드리겠습니다. 멍청하니까요. 인문학이 아니라 이놈학밖엔 모르는 무지한 사람이었을 테니까요. 열심히 읽고 열심히 생각해 보겠습니다. 모르는게 생기면 질문도 하고요. 그러고 싶어서요 이젠 지켜만 보고 듣기만 하는데 이골이 나서요. 이젠 되는 말이든 되지 않는 말이든 쫌 해보고 싶어서요 그래서 이렇게 입주해 보려고요. 저한테도 자리하나 내주실 수 있으시죠?
(헥... 1번쓰고 지쳤네요. )
2. '책마을'에 입주를 선택한 당신에겐, '책'에 대한 유별난 마음씀씀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에게 있어 '책'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당신의 삶은 '책'을 통해서 어떻게 변해 왔는지 듣고 싶습니다. 책과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중학교 이전까지 책이라고는 전래동화 몇권이 전부였을꺼에요. 누구하나 책에 대해서 이야기 해준적이 없었거든요. 그리고 뛰어 놀기 바빴기에 그 당시는 그 업무가 최고였으니까요. 그러다가 중학교 쯤 한 국어 선생님을 만나서 여러권의 책을 읽길 권유 받았습니다. 물론 읽지 않던 저에겐 그 몇권이 남들 몇 십권보다는 더 힘들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책들은 수행평가란 이름으로 가끔 저 자신을 힘들게도 했었기에 마냥 즐거움으로 접하기엔 어려움도 있었지만, 그 국어선생님 덕에 3년 그리고 고등학교 2년까지 도서관 사서를 하면서 접했던 책보다는 국어선생님들의 특이한 마인드(사상이라고 하기엔 아는게 없네요.)들이 항상 절 흥분 시켰고 그들의 생각들이 책에서 나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것도 얼마 되지 않았네요. 이정도 였을 꺼에요. 고등학교 까지의 책들. 아마 동화를 빼면 20권 남짓도 되지 않을만한 책들이죠. 그렇게 어찌어찌 대학을 오고 고등학교땐 문화라는데 익숙치 않던 저에게 여자친구는 자꾸 끌고 다니면서 공연이나 서점을 즐기게 해주었네요. 그러면서 많은 변화가 시작되었네요. 이 포인트에서 책을 즐기게 되었어야 했는데, 책 보다는 카메라라는 친구에게 끌리면서 사진집을 보게 되었죠. 아마 이쯤 책과는 다시 이별을 그렇게 접하는듯 하다가 입궁이 책을 쥐어주었네요 이렇게 이곳에서는 그저 책을 보는게 가장 큰 즐거움이라고는 못했지만 워낙뛰는걸 좋아했기에 운동이 가장 큰 즐거움이었고 그 외의 시간에는 책을 보는게 즐거움이었네요. 물론 지금도요.
사실 책과 저는 많은 상관이 없어요. 그냥 지금은 오랜 친구여서 서로 연락하지 않아도 한번 만나도 할말은 없지만 서로 얼굴만 봐도 편안한 그 정도 관계라고나 할까요. 어렵네요. 그런데 정확한건 앞으론 가치를 가지게 될꺼에요. 아마도.
3. "당신이 어떤 책을 읽어왔는지 말해주면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줄 수 있다. 당신의 독서목록은 그 자체로 당신의 자서전이고 영혼의 연대기이다."(김경욱, 「위험한 독서」) 당신이 읽은 책은 곧 당신을 말해줍니다. 당신이 읽어온 책들이 궁금합니다. 당신이 인상 깊게 읽었던 책들 중 딱 세 권만 보여주세요. 세 권의 책들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우리에게 이야기 해주세요.
아마 이 질문 때문에 가입인사를 쓰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래도 조건이니...시작
저에게 가장 큰 힘을 그리고 변화를 준 책은 [홍세화-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좌우를 가른다]일것 같네요. 저라는 그리고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에게 외치는 소리가 너무나 크게 들려서 이 소리 메아리로만 돌려보내고 싶지 않음을 생각하게 했던 책이네요. 그저 그 큰 소리에 다시 큰 메아리 속에 제 목소리가 조금이나마 들어갔음 하고 바라던 책이네요. 아마 살면서 두 번째로 여러번 읽었을 책이네요. 고등학교 때 그리고 궁에서도 읽었는데 책마을을 알고 읽었을 때가 저 자신을 가장 힘들게 하고 힘나게 했던 책입니다. 책 속의 대한민국의 20대의 모습이 저의 모습이었기에... 이젠 거부하고 싶네요. 그래서 시작한걸지도 모르겠어요.
그리고는 [시읽는 기쁨]누구지는 잠시 잊어 버렸네요. 고등학교 때였을 꺼에요. 수행평가를 위해 이 책을 읽어야 했던게 물론 그전에도 맞지 않게 시라는 문학을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아름다워 보이는 글씨가 그리고 그들의 절제된 눈물이 항상 가슴속으로 울게하곤 했는데 책 쓰신분의 자세한 해설이 너무나 감사했고 수차례 눈물 짓게도 웃게도 해주는게 그 땐 그리도 좋았던지 이 책을 수십번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내용중 가장 기억에 남는건 (눈물은 왜 짠가?)라는 긴 시가 한편있네요. 물론 아들자랑이라고 하는 시나 이런저런 시들이 정말 다 재밌습니다. 이 책을 읽을 때 만큼은 그 시 한편한편의 작가가 된듯한 느낌으로 읽었기에 정말 재밌었네요. 그리고 마지막은 [고숨도치의 우아함] 이 책의 주인공들은 아름다움을 추구합니다. 죽는 순간까지도.... 클래식을 듣고 명화를 보며 이해할 줄 아는 아파트 여 수위 궁에 입궁하고 처음 읽은 책이라 아마도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 그 수위와 다를게 없어 보여서 재밌게 읽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을 읽고 삶에 아름다움이 없다면 죽어서도 후회하겠다는 정말 막연한 생각을 하고 아름다움에 대한 생각을 오래한것 같은데도 결론은 없네요. 아마 하다 말았던 것 같아요. 그땐 그게 저한테 맞았겠죠. 말하는게 익숙치 않았기에 말을 하지 않아도 되었기에 생각을 마무리지을 필요도 없었거든요.
현재는 이 세권이네요. 물론 좋아하는 책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보바리 부인, 알랭 드 보통 3부작 등 소설류가 훨씬 더 많습니다.
4. 한 '문단'으로 스스로를 소개해 주시길 바랍니다. 당신이라는 사람을 보여주기에 한 문단은 긴 것이 아니겠죠? (단, 공지사항에 나와있듯이 문제가 될 수 있는 표현들은 피해주시길 부탁드려요. 물론, 입주 신청서를 내기 전에 공지사항은 꼭 읽어보셨겠죠?)
책이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물론 없진 않았는데 그 존재를 부정하지도 않았는데 보이지 않았고, 책이 내는 소릴듣지 못했습니다. 이제야 겨우 책이 무슨 소릴 내는지 알 것도 같다는 불확실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들의 모든 것을 뽑아내려는 흑심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오늘도 읽어야 될 책을 한권 더 추가했고 다음주에 그 책을 사올 계획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지금은 스펀지입니다. 당신들의 모든걸 흡수하겠다는 목표를 삼고 있습니다. 물을 가득 머금고 나면 끊임없이 먹은 만큼 인정사정 없이 뱉어낼 겁니다. 그때까지 기생하고 있을 껍니다. 조용히 당신들과 함께 한다고 하진 못하겠습니다. 그저 기생하고 있을 껍니다.
가끔 피를 뽑는 소리에 당신들이 아파하길 한편 바라고 있지만 적기가 부끄럽네요.
5. 당신이 생각하는 책마을은 어떤 모습인지, 당신이 책마을에서 무엇을 만나고 싶은지 이야기해주세요.
책마을에서 당신들의 피를 만나고 싶습니다. 당신들이 한없이 속으로 숨기기만 하는 그 깊은 곳에서 뜨겁게 끓고있는 피를 한없이 빨아먹고 싶습니다. 그러다가 언젠가 제 입맛에 맞지 않는 피가 발견되면 언젠간 제 피를 수혈해 보려고 노력해 보겠습니다. 그렇게 제 피를 전하겠습니다. 제가 이곳에 계신 분들로부터 수혈 받았던 그 뜨거운 피를 다른 사람들에게 수혈 할 수 있는 그 뜨거움을 만나고 싶습니다. 사실 이미 만나고 있습니다. 그래도 뭐 항상 더 뜨거우면 좋겠는게 제 심리니까요.
그러니 저는 피가 고프네요...
6. 여기까지 쓰면서 책마을에 당신을 보여주셨다면, 당신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그야말로 가입‘인사를 써주세요. 뭐든 좋습니다. 하고 싶은 말들을 써주세요.
오래 걸렸네요 가입인사 쓰는데 정말 오래 걸렸습니다. 제가 이렇게 현실에 불만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아는데 그래서 너무나 고맙습니다. 이 공간에 들어 올 수 있어서 감사했고. 이 변화를 주심에 감사했습니다. 이젠 그냥 다들 안녕하시란 말밖엔 없네요. 쓸데없이 주저려 보았네요. 항상 쓰다보면 뭘 쓰는지 잊어 버려서. 어쨌든 가장 좋아하고 자주쓰는 말은데. 사랑합시다. 그리고 저 먼저 당신들을 사랑합니다.
언제 지울지는 모르겠네요. 항상 뱉어낸 글들이 창피해 삭제라는 버튼과 쓰기란 버튼이 똑같이 눌려지기에.... 잘 부탁드립니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10
13:55:37
병장 김민규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좌우를 가른다"는 저도 참 인상깊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저 홍세화씨에 대한 개인적 호감때문에 무턱대고 읽었었는데, 당시 너무도 얕던 시야때문에 그냥 속독으로 후다닥 끝나버렸던 기억이 나네요. 이런, 역시 한 권을 읽어도 제대로 읽어야 합니다.
<이주의 가입인사로>를 날립니다 .오랜만인데요? 이런 기분, 크크 2009-03-23
16:58:35
병장 김동균
앗, 승철님
요즘 뜸하신거 같더라니,
이렇게 의미심장한 인삿말을 남겨주셨군요
반가워요. 크-
우린 일촌이잖아요 낄낄 2009-03-24
03:33:21
병장 이우중
저도 [이주의 가입인사로] 하나 보탤게요. 반갑습니다. 2009-03-24
07:59:30
병장 이동열
반갑습니다. 성함이 낯설지는 않은데, 가입인사는 이제 올리신건가요?
앞으로 자주 뵈었으면 합니다. 흐흐...
그런의미에서 저도 [이주의 가입인사]로! 2009-03-24
09:02:56
병장 고승철
민규님/ 이런....이주의 까지 씩이나... 손발이 오그라 드네요..
동균님/ 그러게요 요즘 이런저런 일들로 인터넷을 하지 못하고 있네요.. 하게 되면 이모티콘 또 많이 날릴께요.
우중님/ 저도 반갑습니다. 항상 멀리 계시는 것만 같았는데 이리 반겨주시니 어찌할바를...
동열님/ 가입인사라는게 그리 쉽게 써지지가 않아서 이제야 올립니다. 다시 읽지 못할만큼 창피한 글이지만요. 저도 많이 비추려고 노력하겠습니다. 저도 반갑습니다. 2009-03-24
10:07:37
상병 김지호
겸손한 인사글답지 않게 인상적인 내용이 많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