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입인사]책마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병 박원익  [Homepage]  2009-02-22 23:07:16, 조회: 153, 추천:3 

1. 광활하게 펼쳐진 인트라넷의 세계엔 책마을 말고도 다양한 공간들이 있습니다. 그 공간들 중에서 책마을이라는 곳으로 입주하게 된 것에는 무언가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왜 책마을에 찾아 들어오게 되었나요? 그리고 책마을에 입주 신청을 낸 이유는 무엇인가요? 의례적이고 상투적인 문구가 아닌, 당신의 솔직한 진심을 듣고 싶습니다.
-사실 책을 읽고 사유하며 글을 쓰는 취미를 오래 지속하다보면, 어느덧 스스로가 굉장히 추상화된 상태에 놓여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말하자면 구체적인 인간의 표정이나 개별성에 대한 감각을 상실하게 되고, 심원한 논의를 통해 발견되는 기쁨이 아닌 것들에 대해 위화감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더욱이, 언어를 사랑하고 잘 사용하려는 사람들에게 주변에서 들려오는 일상적인 방언들은 참기 힘든 것입니다. 이러한 완고함은 점차 원래 책과 사유 그리고 글쓰기에 대한, 인문학 전반에 대한 애정이 원래 기초해 있던 기반을 점점 풍화시킨다고 해도 좋습니다. 저는 이것이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쉽게 빠져드는 '추상화'의 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일종의 천형과도 같은 조건. 특히나 '이런 곳'에 거주하는 상황에서, 그러한 추상화가 야기하는 고통은 더욱 가중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현실적인 외로움과 권태 그리고 분노와 같은 감정들과 소외감과 일반적으로 구분되기 힘들기도 합니다. 
이전부터 책마을이라는 커뮤니티의 존재를 여러 지인들로부터 들어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제가 이곳을 찾아오기로 결심한 것은 요컨대 이런 소모적인 상태로부터 벗어나고, 좋은 분들과 좋은 생각을 나누기 위한 것입니다. 이 자리에 오게 될 수 있어 무척 기쁩니다.


2. '책마을'에 입주를 선택한 당신에겐, '책'에 대한 유별난 마음씀씀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에게 있어 '책'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당신의 삶은 '책'을 통해서 어떻게 변해 왔는지 듣고 싶습니다. 책과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일반적으로, 책에 대한 취미가 있는 사람에게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묻는 것은 참으로 곤란한 질문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는 매우 특별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령 난초나 원동기에 대해 취미가 있는 사람에게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묻는다면 당사자들은 단박에 대답하는 대신, 애매한 비유를 동원하기 위해 고심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책에 대한 취미가 특별한 이유는, 그것은 그 자체로 어떤 의미를 가진다기보다는 이러한 일상적인 물음에 대한 어떤 단초를 제공하는 입장에 서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에게 있어 책이란 사유를 퍼 나르는 도르레인 동시에, 야전삽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야전삽과 도르레는 아시다시피 여전히 그 자체로 의미는 없습니다. 오히려 이렇듯 비유가 실패하는 지점에서, 저는 책이란 어떤 관계성을 사유하게 만드는 하나의 공허한 매개라고 생각합니다. 책은 저에게 있어 스스로를 비운 채 현실의 관계체계를 포착하고 이에 대한 진리를 말하는 어떤 것이었습니다. 말라르메가 스스로는 하나의 無에 불과한, 어떠한 유의미한 지시작용을 하지 않지만, 바로 그러한 연유에서 모든 것을 포괄하는 유일무이한 책을 쓰고 싶다고 할 때, 그 역시도 동일한 생각에 기반한 게 아닐지 생각해 봅니다. 이처럼, 책을 대함으로써 얻은 유익한 것은, 나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이야기(오늘날 우리는 이것에 대해 너무 많이 이야기하곤 합니다)하지 않으며 타인에 대해 오히려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마음 쓸 수 있는 태도를 길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책'은 바로 그러한 태도를 가능케 하는 작용과 같지 않은가에 대한 생각 한 자락을 품게 됩니다....


3. "당신이 어떤 책을 읽어왔는지 말해주면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줄 수 있다. 당신의 독서목록은 그 자체로 당신의 자서전이고 영혼의 연대기이다."(김경욱, 「위험한 독서」) 당신이 읽은 책은 곧 당신을 말해줍니다. 당신이 읽어온 책들이 궁금합니다. 당신이 인상 깊게 읽었던 책들 중 딱 세 권만 보여주세요. 세 권의 책들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우리에게 이야기 해주세요.
-최근의 인상 깊었던 세 권의 책에 대해서 쓴다고 하면, 저는 최근에 읽은 책들 밖에 들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우선 제가 존경하는 일본의 비평가 가라타니 고진의 <역사와 반복>이 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우리가 매우 자명한 것으로 간주하는 <근대문학>이 어떤 역사적 기반에 서 있는지, 그것이 어떤 특이한 주관적 태도를 괄호에 둠으로써 자명화되는지에 대해 탁월하게 설명해주는 비평가입니다. 오늘날 많은 글쟁이들과 책 애호가들이 여전히 안주하고 있는 어떤 근대문학적 태도(우리는 자신의 경험을 소설화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게다가 그것이 '이야기'라는 것에 대해서 한 치의 의심도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어떤 '개성'을 담아내는 것으로 표상합니다)와 관련해서, 그의 비평은 그것이 어떻게 현실적 역사성 속에서 도전받고 한정될 수 밖에 없는가에 대한 매우 처절한 비판적 참조점을 던져줍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근대문학의 종언>을 선언한 비평가입니다. 하지만 그는 단연코 포스트모더니스트와 다른 방식으로 동일한 문제에 개입합니다. 그는 당면한 '역사성' 앞에서 글을 쓰고 사유하는 인간들이 어떻게 이에 대응하고 응답할까에 대해 진지하게 물음을 던지는 거의 유일한 비평가입니다.
다음으로 저는 슬라보예 지젝의 <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물기>를 말하고자 합니다. 그는 라캉주의 정신분석학자인 동시에 ㅁㄹㅋㅅ주의자입니다. 여기까지는 새로울 게 없습니다. 특이하게도 그는 동시에, 독일 관념론--헤겔, 칸트, 피히테--의 열렬한 추종자입니다. 그는 우리가 거주하는 후기-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유효한 분석틀을, 헤겔변증법적 틀을 통해 다시 소생시키며, 다시금 유효성을 잃은 기존의 정신분석, ㅁㄹㅋㅅ주의 전통에 새로운 활력을 부여합니다. 제가 그에게 매료될 수 밖에 없는 것은 그가 저에게 '사유'란 어떻게 하는 것인지를 가감없이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를 인기를 잃은 '헤겔 변증법'을 통해 보여줍니다. 그는 오늘날 여전히 가능한 어떤 급진성이나 대안적 상상력이 오늘날 '죽은 개'로 취급되는 헤겔이나 플라톤과 같은 '전체주의의 전조'들 통해 되살아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저는 거기에서 '사유'란 여전히 할만한 것이구나, 희망이 있구나라는 것을 느낍니다.
마지막으로 자크 랑시에르의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입니다. 그는 <불화의 철학자>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사유하는 것은 다름 아닌, '정치'와 '민주주의'라는 진부한 주제들입니다. 하지만 그는 결코 진부하지 않은 방식들로 이를 재-전유하고 재-개념화하는 놀라운 역량을 보여줍니다. 그가 저에게 가르쳐 준 것은, 민주주의란 어떤 제도적 상태나 합의의 틀 내지는 시장경제의 개방성과 같은 것에 있지 않다는 기본적인 가르침입니다. 그는 이를 보여주기 위해 고대 그리스의 언어로 소행합니다. '데모스'를 어떤 무지한 군중의 소란이나 제어되지 않은 욕구의 폭발로 간주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오해에 불과합니다. 데모스는 어떤 사회의 공동현존의 삶의 다양한 방식들과, 그것의 부분들을 셈하고 구조화하는 정체 사이에서, 발생하는 '간극'의 개입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그들(데모스)은 단순히 어떤 사회적으로 소외된 극빈층이 아니라, 기존의 정체에서 어떤 부분도 아니었던 부분, 어떤 셈해지지도 않은 공백에, 박탈되었던 발언의 권리와 평등을 '증명'하는 데서 출현하는 '주체성'이라고 이야기됩니다. 민주주의는 어떤 자리도 아닌 자리의 자율적인 감성적 공간(여기서 소음으로 들렸던 것이 '언어화'되며, 무의미한 그림자 유희에 지나지 않았던 난장은 그 '몸체'를 부여받게 됩니다)을 창출해내는 데모스의 역량에 그 모든 생명력이 달려 있다고 그는 이야기합니다. 이는 우리와 같이 '탁월하게 말하고자' 하는 주체들에게 굉장히 고무적인 소식입니다. 게다가 우리는 이러한 주체화 과정이 출현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랑시에르와 더불어 우리는 그것을 망각에서 구해낼 수 있지 않을까요?


4. 한 '문단'으로 스스로를 소개해 주시길 바랍니다. 당신이라는 사람을 보여주기에 한 문단은 긴 것이 아니겠죠? (단, 공지사항에 나와있듯이 문제가 될 수 있는 표현들은 피해주시길 부탁드려요. 물론, 입주 신청서를 내기 전에 공지사항은 꼭 읽어보셨겠죠?)
-사유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이 하나하나 소중한 책-애호가로 스스로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책이라는 공통적인 취미 외에도 그 밖의 모든 소박한 취미들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영화 감상, 음악 감상, 대화, 기타 등등... 일상생활에서는 소심하고 말수가 적은 남자입니다.


5. 당신이 생각하는 책마을은 어떤 모습인지, 당신이 책마을에서 무엇을 만나고 싶은지 이야기해주세요. 
-저에게 책 저는 이곳을 제 독서감상문을 공유하는 자리로 이용하고 싶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처해 있는 '추상화'의 조건에서 어느정도 벗어나기 위한 심정으로 이 자리의 한 켠에 자리잡고 싶습니다. 그와 더불어, 우선 저는 소설과 문학에 굉장히 약한데, 많은 이들로부터 도움을 받고 유용한 정보를 얻고 싶습니다.


6. 여기까지 쓰면서 책마을에 당신을 보여주셨다면, 당신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그야말로 가입‘인사를 써주세요. 뭐든 좋습니다. 하고 싶은 말들을 써주세요.
-여러분들을 만나게 되서 진심으로 반갑습니다. 앞으로 많은 도움 부탁드립니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10
13:57:29 

 

병장 김민규 
  반갑습니다. 공허한 매개를 의미있게 하는 것은 그것을 통하는 자의 적극성이겠지요. 더 많이 만나고, 더 많이 이야기했으면 좋겠습니다. 이곳이 항상 우리에게 좋은 마당이 될 수 있기를- 2009-02-22
23:56:35
  

 

상병 김예찬 
  어려운 걸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책마을을 통한 많은 배움과 소통의 시간이 있기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2009-02-23
07:47:05
 

 

일병 이정환 
  반갑습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2009-02-23
07:48:08
  

 

병장 김동욱 
  고진, 지젝, 랑시에르. 낄낄 

원익님의 좋은 글과 생각들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군요. 2009-02-24
00:29:41
  

 

일병 이정환 
  책마을에 이 정도 사유의 깊이와 흔적을 묻힌 글들이 올라오길 바라면서, 

가지로- 2009-02-24
13:30:58
  

 

일병 오효섭 
  오 가입인사를 늦게나마 찾아서 봅니다.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