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입인사]노곤
병장 문병준 [Homepage] 2009-04-22 00:31:55, 조회: 64, 추천:0
누군가가 무엇인가를 너무 많이 해서 피곤하다면 나는 너무 오랫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노곤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오랫동안 필명으로 "잠자는 자"라는 이름을 사용했었습니다. 우연히 만든 필명이었지만 돌이켜 볼 때마다 드는 후회는 내가 무심결에 만든 그 이름이 내 지난 시간들을 그대로 채웠던 것은 아니었는지 하는 생각이 들 때입니다. 저는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생산하고 발전하고자 하는 의지와 실천들을 자꾸만 지금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느껴왔습니다. 그리고 그래서 항상 잠들어 있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더 많은 의미를 만들 수 있었는데, 더 적극적으로 할 수 있었는데도 잠에 취한 사람이 포기하고 몸을 가누지 못하는 그런 노곤함에 젖어 있었습니다.
1. 광활하게 펼쳐진 인트라넷의 세계엔 책마을 말고도 다양한 공간들이 있습니다. 그 공간들 중에서 책마을이라는 곳으로 입주하게 된 것에는 무언가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왜 책마을에 찾아 들어오게 되었나요? 그리고 책마을에 입주 신청을 낸 이유는 무엇인가요? 의례적이고 상투적인 문구가 아닌, 당신의 솔직한 진심을 듣고 싶습니다.
비록 항상 게으른 잠결에 빠져 있었지만 나름대로 나를 둘러싼 세계와 진솔하게 부딪히며 그것을 지적인 방식을 통해 인식하고 이해하고 또 극복해보려고 많은 노력을 하였습니다. (사실 그래서 나는 근대적 이성에 대해서 비판적 시각을 갖고 있지만 여전히 그 근대적 이성의 팬입니다.) 그러던 와중에 어쩔 수 없이 몸 담게 된 이곳 - 국가 방위를 위한 조직체는 나의 지적인 기반과 활동들을 활성화하는데 매우 이상적인 조건이었던 이전의 배경과는 달리 너무나도 척박한 토양이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렇게 네 줄을 달기까지 아무도 나의 진지하고 진솔했던 노력과 행위들을 함께 나눌 수 없음에 괴로워하고 외로워하며 혼자서 그 불을 지켜왔습니다. 아마 누구도 완전히 나의 이 감정을 이해해 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할 만큼 눈물로 나는 나를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그만큼 나는 외부의 영향을 쉽게 받는 나약한 성격을 지녔기 때문일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던 와중에 정말로 지인의 소개로 우연히 이곳을 알게 되었고 처음 이 곳을 둘러보는 순간 나와 같은 방식으로 반응하지는 않더라도 나와 같은 조건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는 생각에 나는 이 조직체에 몸담고 나서 처음으로 두근거리는 것 같습니다.
2. '책마을'에 입주를 선택한 당신에겐, '책'에 대한 유별난 마음씀씀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에게 있어 '책'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당신의 삶은 '책'을 통해서 어떻게 변해 왔는지 듣고 싶습니다. 책과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조금 상투적인 표현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진심으로 나는 책을 친구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책을 읽을 때 그것을 TEXT로 인식하기 보다는 저자가 나에게 말을 걸고 있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그 저자의 책을 읽기로 한 것은 내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나는 정말로 나의 판단을 내리고 싶은 분야가 나타났을 때, 또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내용들이 나타났을 때 책을 통해서 저자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고 언제나 그에게 다시 질문을 던집니다. 진짜 친구와 다른 점은 다시 질문을 던졌을 때 그의 대답을 듣기 위해서는 나의 추가적인 독서 노력과 약간의 상상력이 섞인 추론이 필요하다는 점 정도겠지요.
3. "당신이 어떤 책을 읽어왔는지 말해주면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줄 수 있다. 당신의 독서목록은 그 자체로 당신의 자서전이고 영혼의 연대기이다."(김경욱, 「위험한 독서」) 당신이 읽은 책은 곧 당신을 말해줍니다. 당신이 읽어온 책들이 궁금합니다. 당신이 인상 깊게 읽었던 책들 중 딱 세 권만 보여주세요. 세 권의 책들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우리에게 이야기 해주세요.
이문열, "사람의 아들" -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손에 넣어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까지 정말로 100번도 넘게 읽은 책입니다. 심지어 대학 1년 때 학교에 이문열이 강연을 하러 와서 그 너덜너덜한 책을 들고가 싸인을 받았을 정도입니다. 중학 1년 때에는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면서 그냥 아하스 페르츠의 그 여정의 이유모를 둔감한 감동에 젖곤 했었습니다. 나이를 먹어가며 그 책에서부터 여러가지 의미들을 뽑아내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나를 성장하게 해 주었던건, 결국 신이 우리의 불행과 슬픔을 보상해주지 않는다는 인식이었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괴로움과 슬픔 그 고통들이 전적으로 우연적으로 우리에게 운명적으로 주어지고 그에 대한 현실을 넘어선 단계에서의 보상조차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느껴지는 분노. 나는 사람의 아들을 여러번 읽으면서 그 분노에 공감하였고 그래서 이 세상에서의 고통과 슬픔을 바로 여기해서 치유하고 보상해 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학에서 사회과학 - 사회학을 전공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아직 민요섭이 느끼고 회귀하도록 만들었던 쓸쓸함과 두려움은 공감하지 않았습니다.
호르크하이머, 아도르노, "계몽의 변증법" -
고대의 신화적 세계에서부터 지금 여기의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발전 과정을 관통하고 있는 인간의 이성적 사고, 그리고 그 특성인 계몽에 대해서 그 특징과 여러 구체적 면모들을 전율스러울 만큼 잘 묘사하고 있는 책입니다. 우리의 가장 일반적인 사고와 판단의 이성 사용 방식은 환경적 조건에 의해 영향받을 수 밖에 없기에 우리의 일반적인 이성 사용 자체에 대한 언급이기도 합니다. 왜 자기동일자와 타자를 나누고, 그 타자를 또 동일화하여 모든 차이와 개성을 파괴하고 폭력적인 강요와 소외를 낳는지에 대해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서부터 출발할 만큼 깊이 들어가고, 그것에 저항하려는 시도들이 어째서 그 계몽적 이성의 폐해를 답습하며 세계를 야만 상태로 만들어 가는가에 대해서 예술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대단한 설명력을 갖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의 문제 중 어떤 것에 대해 고민을 하더라도 이 책을 읽을 때마다 큰 도움을 얻습니다. 특히 나는 이 책으로부터 현대 한국 사회의 지배적인 지적 풍토인 경제학주의 - 심리학주의 - 유전자생물학주의 등에 대한 비판을 구성하는 데 크게 도움을 얻었습니다. 또 근대 계몽적 이성에 의한 학문의 합리화, 전문화는 우리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아니로 오히려 헛된 글과 수식 놀음으로 폐를 끼칠 수 있다는 이해를 갖게 되었습니다.
헤겔, "정신현상학 서문" -
A라는 지식을 얻었을 때 그 지식 자체가 내포하고 있는 전제와 개념들을 계속 분석하여 전개시키거나 혹은 새로운 루트를 통해 얻은 다른 지식 B가 서로 모순이어서 함께 존재할 수 없을 때, 우리는 어째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A와 B가 동시에 존재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고찰하고 그로부터 종합적인 인식 C를 얻어내는 역- 프랙탈 과정, 이 모습이 바로 진리이다고 헤겔은 정신현상학 서문에서 간단히 스케치했습니다. 나는 정신현상학 전체의 논의에 대해서 깊이 있게 알지 못하며 다만 서문은 여러 번 읽었습니다. 이 서문에서 그려내고 있는 진리에 대한 동적인 이해로부터 나는 편견과 아집으로 가득 찬 지식 놀음으로부터 일찍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A와 B가 모순임에도 불구하고 병존하고 있다면 그것은 다른 조건들에 의해 종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종합의 가능성을 이해한다는 것은 지적 성장입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이성적이다라는 헤겔의 언명은 심지어는 삶과 세계 이해에 대한 긍정의 원천이기도 합니다. 처음 정신현상학 서문을 도서관에서 읽을 때 그 살아 움직이는 그림같은 문장을 따라가며 몸을 떨었던 기억이 납니다. 나는 그 이후로 한 가지 쓸만한 지식을 얻었다고 그것으로 다른 모든 것들을 범주 안에서 해석하려 하고 비판하는 그런 행동을 스스로 지양하고 그런 행위들에 대한 적극적 비판자가 되었습니다.
4. 한 '문단'으로 스스로를 소개해 주시길 바랍니다. 당신이라는 사람을 보여주기에 한 문단은 긴 것이 아니겠죠? (단, 공지사항에 나와있듯이 문제가 될 수 있는 표현들은 피해주시길 부탁드려요. 물론, 입주 신청서를 내기 전에 공지사항은 꼭 읽어보셨겠죠?)
나는 언제나 나 자신과 많은 사람들의 지금 여기에서의 구체적 삶과 현실에 대해서 관심을 거두지 않으려고 한다. 그것이 옳은 것이라는 근거가 약한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 현실을 이해하고 변화시키는 데 역점을 두기에 현실적 실용주의자이다. 하지만 그 목적은 이상적인 상태에 대한 끊임없는 노력이고 그것은 우리의 의사소통으로부터 출발할 수 있다고 믿기에 정치적 이상주의자이다.
5. 당신이 생각하는 책마을은 어떤 모습인지, 당신이 책마을에서 무엇을 만나고 싶은지 이야기해주세요.
위에서도 언급하였는데, 나와 같은 정도로 고통을 느끼진 않지만 나와 같은 정도로 정신적 열망을 이 곳에 속함으로 인해 욕구를 제한당하였던 사람들이 모인 곳. 그렇기에 나는 그저 당신들을 만나고 싶고, 또 정말 만나고 싶었습니다.
6. 여기까지 쓰면서 책마을에 당신을 보여주셨다면, 당신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그야말로 가입‘인사를 써주세요. 뭐든 좋습니다. 하고 싶은 말들을 써주세요.
사실 주로 어떤 책들에 대해서 어떤 글들을 써 주시는지 보는 것 위주로 활동을 하려 했는데 내글/후기 카테고리에 근대성에 대한 좋은 글들이 많이 보여서 정말 가슴이 두근거림을 오랜만에 느꼈습니다. 이제 인트라넷을 사용할 수 있는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제서야 알게 되다니 안타까움을 금하기 어렵습니다. 남은 시간이나마 여러분들과 많은 교류를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오학준 이병 책마을이라는 이 공간에서 만나게 되어 정말 뜻밖이고 반갑다. 그 옛날 사회학원론에서 장덕진이 '인터넷이란 공간은 심지어 지금 나와 채팅을 하는 상대가 개Dog인지 아닌지조차 알 수 없는 곳이다'라는 만평을 비평하며 '만약 당신이 지금 인터넷 채팅을 하는 상대가 개라면 그것은 사실 당신도 개라는 뜻이다.' 라고 했던 것이 생각이 난다. 여기에서의 이 만남이 그런 사회학적 인식에 부합하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의 인연이 정말 이 정도인 건지 아리송하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10
13:53:58
상병 김예찬
피곤 - 노곤 입니까? 재미있네요.
얼마 안남은 시간 동안이라도 책마을에 병준님의 이름이 진하게 남기를 기대하겠습니다. 2009-04-22
08:23:53
일병 이정환
독서취향과 관심분야가 저와 비슷하시군요. 혹시 강유원 씨를 아시는지요? 2009-04-22
08:46:18
병장 김범수
철학 쪽을 좋아하시나봐요. 2009-04-22
13:46:07
이병 오학준
적어도 너나 내가 '개'가 되지만 않는다면 우리의 인연이 '이정도'가 되겠지 뭐. 신기하군. 2009-04-22
18:58:19
병장 문병준
김예찬 // 오학준 이병과 저의 삶과 독서를 대하는 태도 자체가 그런 상반된 결과를 낳았을 겁니다.
이정환 // 예 알고 있습니다. 제가 있던 곳에서는 강막수의 경철수고를 새로 번역해서 대단히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었죠. 비록 저는 잠을 자고 있어서 또 다시 읽는 데에는 실패했었지만. 그의 홈페이지에는 대단히 가치있는 자료들과 그의 좋은 문장들이 많이 있었던 걸로 기억하네요. 강유원을 보면서 학자의 삶과 학문적 삶이 때와 조건에 따라서 조금 멀리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그래도 학문에의 의지를 지키는 것은 상관 없다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김범수 // 전공은 사회학인데도 전공보다는 오히려 철학적 사유들 속에서 이런 저런 생각을 펼치기를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오학준 // 이건 뭔가요. 진짜 오학준이네요. (사실 멋부리기가 심한 글을 읽으면서 동명이인일리는 없다고 100% 확신했다.) 사실 개여도 별 상관은 없잖아? 하하. 2009-04-22
19:44:38
이병 오학준
병준 // 아직도 담백하려면 멀었지. 2009-04-22
20:09:22
상병 김태완
애늙은이 같애. 그치만 정겹군요.
기억에 남는 책들에 대한 서술이 제겐 훌륭한 추천이 됐어요.
그치만 다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지금 읽는 책을 다 읽고 다른 책을 읽고 싶을 때 여기 책마을에서 '노곤'을 찾아야 겠어요. 2009-04-23
11:40:45
병장 문병준
김태완 //
애늙은이 같다니 왠지 감사합니다. 하하. 하지만 요샌 가끔 애가 아니라 정말 늙은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거울을 볼 때마다 드네요.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이 조직체에 속하기 전까지 학자 지망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동료들과 지적인 교류를 하는 데에 굉장히 게을렀었죠. 이곳으로부터 벗어나 재탄생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지금 비록 다른 생각도 많이 했지만 학자 지망도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재탄생 이후에는 적극적으로 교류하려 했는데 이곳에서 일찍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 정말 즐거운 기분입니다. 김태완님과도 많이 교류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근데 저는 주말이나 당직분대장 근무 때가 아니면 올 수가 없어서 시간이 별로 없다는게 아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