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사물의 존재양화 
 병장 이승일 03-24 02:23 | HIT : 105 





1. 우선 양화사 (∀ 혹은 ∃) 를 쓰면서 '존재' 라는 개념을 거부한다는 것은 너무 이상하게 들립니다. 그것은 한국말로 "나는 한국말을 쓰지 않는다" 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바가 없습니다.
 한가지 궁금한 것은, 태식씨가 말하려고 하시는 것이 일종의 메트릭스 이야기인가 하는 것입니다. 저는 'the Construct' 안에서 모피어스가 네오에게 한 대사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What is 'real'? How do you define 'real'?
If you mean reality by what you see, what you feel, and what you taste, then reality is just electronic signals interpreted by your brain"
(' 진짜' 라는게 뭐지? 그것을 어떻게 정의하지? 만약 실재라는 말을 통해 눈에 보이는 것, 만져지는 것, 맛볼 수 있는 것 등을 의미한다면, 실재란 단지 네 뇌에 의해 해석된 전기 신호에 불과해)

 만약 이러한 종류의 주장이라면 그것은 그다지 색다른 주장은 아닐 것입니다. 

( 하지만 심지어 이 경우에도 태식씨는 여전히 '뇌의 신경' 들에 대한 존재론에 개입될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해 이런 주장을 하려면 어쨌든 뇌의 존재를 인정해야합니다. 
 요컨대, 어찌되었건 무언가는 존재해야합니다.) 



2. 혹은 이런 이야기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즉  "저 코뿔소는 뿔이 하나다" 와 "유니콘은 뿔이 하나다." 라는 명제가 있을 때, 이 두 명제에서 속박된 두 변항 - 저 코뿔소와 유니콘 - 의 존재론적 지위는 구분할 수 없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다음과 같이 존재 양화사를 다르게 써서 구분할 수 있습니다.

( ∃x)(x = 코뿔소  &  x 는 뿔이 하나이다)

 그리고 

( ∃'y)(y = 유니콘  &  y 는 뿔이 하나이다)


 아래 문장에서는 ∃ 가 아니라 ∃' 가 씌었음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첫번째 문장은 코뿔소를  '현실세계에서' 양화시키고 있는데 奮?두번째 문장은 유니콘을 '가능세계에서' 양화시키고 있습니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모든 가상적 물체는, 그것이 어떠한 가능세계에 존재한다고 가정함으로써 양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태식씨의 주장은 다음과 같이 서술될 수 있지 않나 합니다 .

 임의의 1항 명제 함수 F에 대해, 그리고 임의의 가능세계 존재 양화사 ∃' 에 대해, 

( ∃x)(Fx) ↔ (∃'x)(Fx)

 라고 말입니다. 즉 어떤 대상이 현실세계에 존재하면서 F 라는 명제함수를 만족하는지, 가능세계에 존재하면서 F 라는 명제함수를 만족하는지 구분할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애초에 가능세계 양화사라는 것이 필요가 없어질테고, 모든 변항은, 그것이 현재에서 존재하건 말건, ∃ 라는 기호 하나로 전부 양화시킬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결론적으로 어떤 표현이 존재하는 한, 그것은 존재한다는 주장을 받아드려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말로 표현해낼 수 있는 모든 것 - 예를 들면 빨간색 나무-은 이 앞에 모니터가 있는 바로 그 방식과 똑같이 존재하며, 어떤 것이 현실세계에 존재하는지 가능세계에 존재하는지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해 지는 것입니다. ㅡ 태식씨가 의도하시려는 것은 이런 종류의 것입니까? 

( 참고로 이러한 내용은 마이농이라는 학자가 주장했다가 버트런트 러셀한테 죽어라고 욕먹었던 그런 내용입니다.)





 병장 성태식 
1. 일단 매트릭스의 대사와 기본적으로 같은 관점을 취합니다. 사실개념의 파괴에 있어서 그보다 더 좋은 이야기는 없으니까요. 

 제 이야기의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정보에서 사실개념이 직접적으로 도출되지 않는다. 
-2. 사실개념은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정보 중 일부에 대한 심리적 반응이다. 
 사실에서 객관성을 제거하는거지요. 그리고 칸트처럼 '상호주관적 보편성'을 적용해서 사실개념을 재구성하자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칸트를 정확히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찌되었건 무언가는 존재해야 합니다. 예. 그렇지요. 
' 명제의 진리값은 공리계가 결정.'하고, '자기 무모순성을 스스로 밝힐 수 있는 공리계'를 만들 수는 없으니까요. 우리가 신경체계에서 받아들이는 정보들을 명제로 바꾼다면, 그 중에 최소한 하나는 결정불가능명제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마음 속에 있어야 하는 그 결정불가능 명제를 우리는 찾을 수 있나요? (물론. 이건 괴델이해가 잘못된 것일수도 있지만요. 하지만 제게는 괴델의 이야기가 '각 공리계는 서로 상대적이다.'라고 들리는군요. 역시 공부부터...) 

 결국 우리의 심리가 문제입니다. 알 수 없는 모든 것을 사실로 확정해버리는건 우리의 심리지이요. '뇌신경세포가 우리에게 정보를 준다.'라는 말도 제 개념 대로라면 사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지요. 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심리를 도입해서 사실을 만들어 내어야지요. 

 핵심은 여기입니다. 사실의 파괴는 현대철학이 시작된 이래. 아니. 칸트 이래로 수십차례나 이루어진 흔한 주장에 불과합니다. 

 근데 여기까지 오기 전에 걸리는 부분이 너무 많더군요. (웃음) 

2. 이 문제는 '속성'과 '본질'이라는 형이상학적 측면에서 접근해 보지요. 
' 모니터가 어떠한 방법으로도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말은 모니터의 본질에 대한 진술입니다. 
 이 말을 양화사로 표현한다면 (~∃x)(x=모니터) 라고 할 수 있을겁니다. 

 그러나 '가상'이라는 말은 대상의 속성을 나타내는 동시에,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함축합니다. '가상'이 '존재하지 않으나 존재하는 것으로 착각된 상태'를 뜻한다면 말이지요. 이 경우에는 '가상'이라는 속성을 띌 대상이 먼저 존재해야 하며, 그 이후에나 '가상'이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 모순점을 지적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03-24   

 병장 성태식 
 어허. 다시보니 승일씨 페이스에 말리고 있었군요 (...) 
 제가 처음에 했던 질문은 존재양화와 관련이 없었습니다. 

' 가상과 사실 - 을 쓰다가'의 핵심부분을 다시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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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로 압축하면 
 우리가 어떠한 대상을 '가상'이라고 부른다면, 우리는 그 대상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가상이라고 부를 수가 없지요. 

 의문은 여기서 출발합니다. 
 우리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대상을 '가상'이라고 부를 수 없다면 
'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면서도 '사실'이라고 불러야만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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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상의 존재여부가 아니라 우리의 지식에 대한 문제를 물었군요. 

 실재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 가상과 사실을 가르는 기준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이전에 말했듯 가상이 우리의 '착각' 혹은 '오류' 혹은 '속음'이라면, 
 우리가 가상적 사물을 가상적 모니터라 부르려면 그것이 '착각' , '오류', '속임수'임을 알아야 한다는거죠. 

 뒤집어보지요. 우리가 우리 스스로 착각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오류라는 사실을 모르고, 속았다는 사실을 모르면 우리는 가상을 사실이라 부르게 되지요. 

 간단한 거였군요.(...) 03-24   

 병장 김청하 
 그러면 'There is no spoon.'이라는 말을 분석하면 (∃'x)(x = 숟가락 & x 는 존재하지 않는다) 가 되어 가능세계에는 존재하나 현실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말이 되는건가요. 03-24   

 병장 이승일 
 태식 / 태식씨의 의문은 단지 그러한 생각이 옳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드러내주는 의문이 아닐까요? 플라톤의 수염이라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 두명이 '플라톤은 수염이 있었는가?' 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죠. 그런데 이야기하다보니, 플라톤에게 수염이 있었다고 주장했던 사람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좋아, 네 말대로 플라톤에게 수염이 없었다고 치자. 근데 만약 그렇다면 대체 "플라톤에게 수염이 없다" 라는 말은 무슨 뜻이지? '플라톤의 수염' 은 아무것도 지시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네 말은 완전 무의미해지잖아?" 

 즉 만약 어떤 것이 실재하는게 아니라면, 그게 실재하지 않는다는 말 조차 무의미해진다는 것이지요. 이 문제는 다음과 같은 점을 상기하면 잘못된 문제임이 드러납니다. '존재하다' 라는 것은 술어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존재는 어떤 것의 '속성'이 아닙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양화사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양화사는 술어가 아닙니다. 어떤 것이 존재한다는 말은, 그 대상에 어떤 속성을 부여하기 위해 전제되어야할 필요조건일 뿐입니다. 03-24 * 

 병장 이승일 
 청하 / 위에서 말씀 드렸듯이 '존재한다' 라는 것은 술어가 아닙니다. 따라서 There is no spoon는 다음과 같이 씌어져야합니다. 

-( ∃x)(x=숟가락) 

 말하자면, '어떤 것도 숟가락과 동일하지 않다.' 는 것이지요. 만약 숟가락을 집합명사로 본다면 다음과 같이 써야할 것입니다. 

-( ∃x)(x∈{ 숟가락들의 집합}) 03-25 * 

 병장 성태식 
 음. '가상과 사실'이 곧 완성될 겝니다. 그 때 다시 논의하겠습니다. 
( 이거. 별로 내용도 없는 글을 이리저리 광고만 하면 재미 없어지는데. 큰일났네.) 

 엄밀히 말해 저는 '무의미하다'라는 단어를 쓸 수 없습니다. 이 문제도 이미 글 속에 주석으로 반영되어 있습니다. 

 근데 XXXX. 애시당초 우리의 언어체계가 실재를 반영해서 만들어져 있다니까요. 
 정말 쓸 만한 단어가 없어요. (아 신발. 어쩌라고!) (......히스테리의 시작) 
 게다가 실재를 반영하지 않은 언어체계를 만들어도, 우리의 심리가 그것에 대해 마치 '실재처럼'반응을 할겁니다. 뭐. 씨. 방법이 안 나오는 중입니다. (.............) 


 아. 그리고. '가상'이나 '사실'이 사물의 속성이 아니라면, 도대체 '이 3D모니터는 가상의 모니터이다.'라는 말은 어떻게 표현이 되나요? 불가능하다는걸 논증으로 밝히기는 어렵지만 공부하고 시도하면 될 거 같은데요. (...) 03-25   

 병장 이승일 
 그러게 실재 개념 없이는 결코 언어의 의미가 완결될 수 없다니까요(웃음) 

" 이 3d 모니터는 가상의 모니터이다." 는 다음과 같이 표현됩니다. 
' 이 3D 모니터' = m 이라고 표시하면, 

-( ∃x)(x=m) & -(∃'y)(y=m) 

 다시 말해,'현실 세계에서 어떤 x 도 m 과 같지 않고, 어떤 가능세계에서 어떤 y 는 m과 같다. ' 03-26 * 

 병장 성태식 
 승일 // 
1. 크핫. 맞습니다. 실재 개념 없이는 결코 언어의 의미가 완결되지 않습니다. 어쨌든 언어를 다루는건 우리의 '심리'니까요. 
 단지 이 실재개념을 '물리적'으로 다루는 현상은 극복해야되겠지요. 그게 목표입니다. 

2. 엇. 그러면 -(∃x)(x=m) & (∃'y)(y=m) 이거아닌가요? -기호를 빼야될거 같은데. (웃음) 

3. 그리고.. 이 해결책은 제가 지적한 부분이랑 같은 내용입니다. 이것은 가능세계에서의 모니터를 존재를 주장하는데, 그렇다면 가상은 일종의 사실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 되잖아요. 우리가 '착각했다'는 표현에 대한 반론이 먼저 필요한 듯 합니다. 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