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성에 관한 짧은 생각 
병장 이승일 01-23 02:22 | HIT : 173 
 

 

-구본성씨의 글을 읽다가 생각나서 몇자 적어봅니다. 
(경 고 : 첫 문단이 암시하는 것과 달리 이 글은 전혀 복잡하지 않아요.. )

A : 빛은 왜 다른 매질로 들어갈 때 굴절되는가? 

B :매질에 따라 빛의 속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A :속도가 달라진다고 해서 왜 굴절되어야하는가? 

B속도가 달라지면, 두 점을 연결하는 최단거리는 직선이 아니라 매질이 바뀌는 지점에서 꺾이는 선분이 된다.

A: 아...그렇구나. 응? 근데 '두 점을 연결하는 최단거리' 라는 말에서 '두 점' 은 대체 어떻게 결정되는거지? 우리는 한 점에서 빛을 쏜다... 빛은 다른 점에 도달하겠지. 그런데 이 점은 빛이 도달했을 때 비로소 결정된 점이다. 두 점사이의 최단거리라는 말은, 두 점이 이미 결정되어있을 때에만 의미있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빛은 자기가 어디로 갈지 미리 알고 있어서, 그곳에 가는 최단거리를 선택해서 진행한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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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점을 연결하는 최단거리로 빛이 진행한다...라는 말은 분명 무언가 앞 뒤가 뒤바뀐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양자역학에서는 A 의 질문에 대해 뭐라고 대답할까? 양자역학에 따르면 빛은 단지 한 경로로만 진행하는 것이 아니다. 빛은 오만가지 '잠재적' 경로로 진행한다. 이 경로들은 각기 다른 확률진폭을 갖고 있는데, 이 중 가장 큰 확률을 갖고 있는 경로가 선택된다. (물론 다른 경로가 선택될 수도 있는데, 그 확률은 당연히 작을 것이다.) 빛의 양자역학적 경로는 수없이 많은 경로들의 중첩상태이며 우리가 관측할 때에는 그 중 가장 높은 확률의 경로만 드러난다는 것이다. 
(빛의 경로선택에 관해서는 파인만의 '경로 적분법' 을 이용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에 관한 아주 좋은 참고서적으로 일반인을 위한 QED 라는 책을 추천한다. 매우 얇고, 제목이 암시하듯 일반 독자들에게 관대하다. )


양자역학은 빛의 경로에 대해 합리적인 모형을 제시하긴 하지만, 여전히 모든 궁금증을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대체 나머지 경로들의 의미는 무엇인가? ...' 나머지 '잠재적' 경로들은 우리에게 관측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한 방식으로 실제 경로에 영향을 미친다. 잠재적 경로들은 말하자면 '가능성' 이며, 그것도 현실에 영향을 미치는 가능성인 것이다. 

' 현실에 영향을 미치는 가능성' 이라는 개념은 정말로 흥미로운 개념이다. 가능성이란 흔히 인간의 머리속에 있다고 생각된다. 그것은 단지 관념이며, 실재가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빛의 잠재적 경로가 실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은 가능성 역시 실재의 한 양상이 아닐까 하는 공상을 하게끔 만든다. 가능성, 더 나아가 인간의 정신은 물질세계와 마찬가지로 실재의 한 일면이 아닐까? 이것은 물론 다소 비약적이다. 그러나 그렇게 심한 비약인 것도 아니다. 

나는 가능성이라는 개념에 매우 관심이 많으며, 전공도 가능성의 논리인 '양상논리학'이다. 양상논리학 안에서도 '양상 허구론', '양상실재론' 등의 입장이 존재한다. 물론 이 논의는 양자역학과 관련된 논의와 거리가 있지만, 궁극적으로 의미하는 바는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진화나 생명체의 행동선택에 '경로선택' 과 유사한 방식이 분명히 관여한다고 믿는다. 진화론은 진화를 단순히 시행착오에 의한 결과로 묘사하고 있지만, 실제로 자연은 그렇게 많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는다. 자연은 모든 경우를 전부 시험해보지 않는다. 그런 경우들은 '잠재적으로' 시험되는 것은 아닐까?  
생명체가 행동을 선택하는 것에도 유사한 원리가 포함되어있을지 모른다. 우리는 여러가지 가능성들을 '생각' 하고나서 하나의 행동을 선택한다. 우리가 '생각' 이라고 부르는 이 현상이야 말로 사실은 잠재적 가능성들의 세계가 아닐까? 

나는 이 글을 엄밀한 태도로 쓰지 않았다. 그냥 짧은 생각일 뿐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엄밀한 방식으로 진행시키고 있는 사람들은 이 행성 위에 꽤 많이 있고, 그렇게 오랜 세월이 지나기 전에 어떤 결실을 맺으리라고 기대한다. 정신 역시 물질과 마찬가지로 단지 실재의 한 일면임이 드러날지도 모른다. 정신과 물질은  하나의 실재를 다른 관점에서 보았을 때 나타나는 단면들일지도 모른다. 실재는 결코 물질과 동일하지 않으며, 그보다 더 풍부한 무엇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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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병 조윤호 
22.6.1.55   QED를 읽으며 수많은 화살표의 꼬리에 머리를 잇던 기억이 나는 군요. 
넷째날부터인가 스핀나오면서 때려치웠지만, 다시 도전할 예정입니다. 01-23 * 
 
병장 이영기 
48.9.5.129   흐음. 글의 내용 자체는 알겠지만 논리는 이해가 안간다. 
.......... 
무언가 막 신학적이다. (.........) 01-23 * 
 
 병장 김청하 
52.2.6.71   흥미로운 글이군요. 관련해서는 여러가지 설명이 있습니다만, 어쨌든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관측에 영향을 미친다면 그것이 정말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것은 존재한다고 봐야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가능성(들)'은 실재하는가? 헤헤헤 띠용띠용. 01-23 * 
 
병장 장선혁 
38.1.6.125   우리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그럴 듯한 이야기' 일 뿐이라는 것. 

근데 빛이 최단거리로 움직인다는 것은 생각이 다릅니다. 빛은 파장인데 두점이라는 것을 미리 가정하더라도 최단거리가 안 된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01-23 * 
 
 병장 임정우 
5.5.1.102   재밌다. 신기하다. 헤헤헤 띠용띠용. 01-23 * 
 
병장 정준엽 
56.53.1.25   삼각관계에 있는 두 남자와 한 여자가 있는데, 
두 남자끼리 눈맞을 확률이 분명 있으며, 그 커플에게 질투를 느끼는 여자가 있을 확률도 있다는 말이군요. 01-23 * 
 
병장 이승일 
54.2.9.70   선혁 / 빛의 최단거리는 당연히 파장으로서의 좌우, 상하 움직임을 제외한 이후의 이야기이죠 (.....) 이 우주에 선혁씨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직선운동으로 움직이는 입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01-23 * 
 
일병 구본성 
5.12.1.72   드디어 제가 읽었던 농담도 잘하는 파인만 씨의 책 제목이 떠올랐습니다. 일반~ 그것이군요. 내용이 자세히 생각이 안 나서 대충 때웠고 (이해가 제대로 안된 측면도 있겠지요) 그래서 글이 의도와는 달리 복잡해졌나 봅니다. <--- 글의 첫문장에 관한 변명입니다. 

그리고 양상논리학이라... 왠지 포스가 느껴집니다. 01-23 * 
 
상병 박선용 
22.34.1.65   아 재밌습니다 
더 더 더 해주세요 01-24 * 
 
병장 장선혁 
38.1.6.125   승일/그니깐 최단거리라는 게 단지 상념일 뿐이라는 뻔한 소리죠 뭐. 
저~근데 레이저는 어떤 특성을 지녔는지 좀... 01-24 * 
 
병장 이승일 
54.2.9.70   선혁 / 레이저는 보통 빛과 전혀 다를 게 없습니다. 단, 빛줄기 안에 포함되어있는 파장이 모두 (거의) 동일하다는 점만 다르지요. 

일반적인 빛은 여러 파장의 광양자가 함께 섞여있습니다. 이들 서로가 간섭을 일으키기 때문에 빛이 퍼지게 됩니다. 반면 레이저는 거의 동일한 파장의 빛으로 이뤄져있기 때문에 간섭도 거의 없으며, 퍼지지 않고 곧게 진행할 수 있습니다. 0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