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 가까운 미술관 앞에서  
병장 김형태  [Homepage]  2009-07-03 134342, 조회 206, 추천2 

가까운 미술관 앞에서


1.
최근 다양한 분야에서 미술이 각광받고 있다. 서울을 세계 디자인의 메카로 만들겠다는 뛰어난() 취지로, 세계디자인박람회를 개최하는 등 우리는 뒤늦은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는 예술을 추구하는 한 사람의 관점에서 볼 때 바람직한 모습이다. 디자인은 어느 곳에도 빠지지 않기 때문이다. mp3, 휴대폰, 생활필수품에서부터 고층건물 앞 조각상까지 놓칠 수 없는 것이 디자인이다. 때문에 미래지향적 투자를 바탕으로 젊은 친구들의 감각을 깨우치고, 보다 많은 눈을 통해 범국가적인 발전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은 관광수입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확이 될 것이다.
먹고 살만하니 이제야 돌아볼 수 있는 것이 예술분야라지만 일단은 유.일.하.게. 합격점인 셈이다.

2.
학창시절 미술과목의 중간, 기말고사에 단골로 나오는 문제를 기억하는가. 뭉크나 마그리트, 클림트, 피카소의 유명작품들을 물만 닿으면 스러져버릴 갱지에 흑백으로 인쇄해 제목을 맞추는 문제 말이다. 
 이것도 기억할 수 있는가. 3점투시를 이용한 정육면체를 그리고 명암을 넣으라며 흔히 ‘미술학원 다니는 아이들’만 90점 이상의 점수를 획득할 수 있는 네모속의 네모실습.(당시 나는 점수를 받고 졸업을 할 때까지 왜 내 점수가 D-인지 고심했다. 막상 내 정육면체는 두부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미술시간 존재의 이유를 몰랐다. 그럴만한 이유를 찾으라면 ‘미술점수를 잘 받아 좋은 내신을 획득해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 랄까. 마냥 ‘그리는 일’만 좋아했던 나는 두부로 가득채운 흰 캔버스지로 대체되는 실기과제나, 갱지에 알아보지도 못할 새카만 잉크로 인쇄한 그림의 제목을 맞추는 이론으로 가득한 미술을 미술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머리보다 가슴이 뛰어야하는 것이 예술이 아니던가.
 그래, 툭 까놓고 얘기해서 예체능이라는 이름으로 하나 되는 미술, 체육, 음악은 수업시간이 아닌 수업시간이고, 그렇기에 일주일에 몇 번 있지도 않은 이 ‘넉넉한’ 수업진행방식을 기다렸는지도 모르겠다. 수업은 대-충 ‘자 오늘은 난을 쳐보자’ 라던가 ‘오늘은 유화를 그려보자, 일단 종이에다가 모든 색을 쳐 바른다!’ 로 시작되어 시간이 지날수록 미술보다는 서로의 잡담을 나누고 고민을 해결하는 시간으로 변해버렸을 이 치밀한 시간이 시험 때만 되면 하루사이에 5절 스케치북 가득 여러 종류의 ‘작품’을 완성하고, 한 번도 들춰본 적 없어 새하얀 교과서속에 숨 쉬고 있는 마그리트인지 마가레트인지 모를 것들을 외워야하는 이 아이러니하지만 수긍할 수밖에 없는 미술을 미술이라 얘기했다.
 내 고등학교 1학년 2학기 첫 과제는 유화였다. 역시나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비롯한 우리)는 지난해 선배들의 작품이라며 보여주는 그 ‘빛나는’그림들에 감탄했다. 그리고 그려보란다. 유명한 유화작품을 보고 그려서 가장 잘 그린 그림은 학교 작품전에도 내주시겠다는 약속이었다. 베끼라는 얘기다. 뭐, 이제 처음 유화를 알고 모든 그림은 연필과 수채화와 크레파스로만 그리는 줄 알았던(맞다, 데칼코마니라는 호쾌한 것도 있다) 17살짜리 남자애들이 새롭게 유화를 그리라면 얼마나 대단한 작품을 만들 것이냐는 우려에서 인지, 베끼라는 것이다.
 난 착한 학생은 아니었지만 회초리가 무서웠다. 그래서 베꼈다. 아니 베끼려고 노력했다. 작품명이 기억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서양의 어느 화가가 그린 강가의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파도처럼 열정적으로 넘실거리지는 않지만 그래도 흐름이라는 것이 있어 여간 그리기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미술시간에도 그러했듯 수업시간에는 대충 끼적이고 방과 후 집에 가져가 내 방을 개판 오 분 전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밤늦게 까지 그리고 있는데, 그날따라 오밤중 퇴근하신 어머니께서 내 그림을 보고는 좋다고 하는 것이었다. (물론 원본은 보지 못하셨다) ‘그런가-’라는 생각으로 신나서 그리는데, 점점 원본과는 다른 새로운 그림으로 가는 것이었다. 문제는 역시 그 강물이었는데 의도치 않은 터치들로 강물이 바다가 되어버렸다. 
 오,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이여. 소가 뒷걸음질 치다 쥐며느리 잡은 겪이라면 이런 것일까. 그때부터 새로운 명작이 탄생하기 시작했다. 캔버스를 휘감는 이 엄청난 파도라면 모나리자의 쉬 마려운 표정보다 더 오묘했고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와 맞서는 마그리트의 아이러니를 담고 있었다.
 그리고 평가시간에 호되게 혼났다. 아니 호될 정도도 못되는 것에 손바닥, 발바닥만 고생했다. 
 아- 창작의 자유여 어디로 가버린 것인가. 언제까지 순수하지 못한 교육으로 순수미술을 얘기할 것인가.
 나는 어쩔 수 없이 캔버스위에 다시 물감을 덮고, 집에 가서 꿍하니 있었다. 마감은 내일모래까지고 어떻게든 안 되는 평균점수는 올려야겠고, 이미 나의 역작은 캔버스의 아래에 검은 물감으로 덮여버려서 더 이상 붓을 만질 수 없었다. 낙심한 나를 보고 어머니께서는 친구 중 미술선생님에게 그 캔버스를 가져가 내가 보고 그리던 그림과 똑같이 만들어 오셨다. 그리고 그 그림은 전시회에 걸렸으며 지금은 우리 집 식탁 옆에 걸려있다. (선생님은 그림을 학교에 기증해 주길 바라셨지만, 내 것이 ‘빛나는’으로 전락되어 ‘너희 선배가 그린 그림이’ 될까 무서웠다)

3.
 대학 입시미술의 시작은 초등학교 취미삼아 다니던 미술학원과 같이 선긋기이다. 4절 캔트지 가득, 삐뚤거리는 연필을 부여잡고 처음부터 끝까지 내려 긋는 것이다. 선긋기는 같으나 나머지 부분은 모두 다르다. 초등학교시절 미술학원에는 알다가도 모를 8절 캔트지에 여기저기 자를 대고 각기 다른 색을 칠해논 선배들의 그림이 걸려있기는 했지만 나는 아니었다.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고 칠하고 싶은 색으로 칠했다. 
 그때와는 조금 다르지만, 현재 디자인과에 진학하기 위해 많은 수험생들이 준비하는 과목은 ‘발상과 표현’ 혹은 ‘자유표현’ 쯤 되겠다. 이 과목은 주어진 주제를 두고 응시자들이 상상의 나래를 펼쳐 주제와 연관된 그림을 그리는 것인데 홍대 앞이나 노량진의 미술학원가에서 ‘디자인’이라며 흔히 볼 수 있는 그림들이다.
 방학기간은 미대준비생들에게 지옥과 같은 시간이다. 지방에서 준비하던 학생들도 여름, 겨울방학이 되면 홍대 앞으로와 방을 잡고 한 달, 두 달씩 하숙을 하며 하루 20시간씩 그림을 그리며 아침에는 4대, 저녁에는 5대씩 허벅지가 혼나기도 한다. 많은 시간을 할애해 준비하는 것은 ‘표현력’이다. 그러니까 실물하고 똑같이 그리라는 것이다. 준비하는 과목은 ‘발상(發喪)과 표현(表現)’인데, 길게는 삼년, 짧게도 삼년 표현력만 기르는 것이다. ‘대학에서 원하는 것은 이게 아닐거야.’ 라는 기대도 해봤지만, 이런 기대들은 교수들의 평가에서 무너졌다. 한 달에 한번 정도는 학원에서 대학교수들을 초빙해 공개채점을 하곤 하는데 그들은 ‘공식’에 입각한 채점을 즐기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디자인과중 으뜸으로 치는, 흔히 홍대보다 더 쳐준다는 K대의 교수도 별반 다를 바 없었다. 그런 식으로 채점을 치루고 나니, 미술학원에서도 어쩔 수없이 교육방법을 바꿔 ‘원(주제) - 투(부주제) - 쓰리(배경)’로 일관하는 것이었다.(미술학원가의 그림을 유심히 본다면 그림이 다 똑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공식은 디자인과목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소묘, 수채화도 마찬가지이지만 이미 순수미술은 순수미술로 받아들이기에 똑같이 그리는 것으로 묵인 되고, 수험생들은 그저 시험당일 아그리파의 측면만을 그리기 위해 시험장에 일찍가 자리를 잡을 뿐이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몇 몇 디자인 대학에서는 시험장에서 발표되어야 할 주제를 몇 가지로 추려내어 사전에 발표한다는 것이다. 과목명에 명색의 ‘발상(發喪)’이 포함되어 있지만 그건 너희들 학원에서 열심히 하고, 시험장에서는 출중한 표현력을 보이라는 취지랄까.

4.
좋다, 계획된 디자인 박람회와 잦은 미술전시회, 다양한 분야에 내재된 예술성. 하지만 1학기 그림 검사 전날 즈음에나 완성되는 ‘역작의 스케치북’이나, 주제 부주제 배경으로 이루어지는 원투쓰리나 공식은 공식인 것이고 이것이 우리가 접하는 글로벌시대의 미술교육이다. ‘얼마나 알고 얘기하는 거냐’ 라고 반박한다면 나는 그저 미술을 꿈꾸는 평범한 사람이고, 이런 평범한 사람에게서 나오는 편견이나 경험은 우리의 특.별.한. 교육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얘기하고 싶다. 
 초등, 중등, 고등과정을 거치면서 예체능, 특히 미술교육은 점점 후퇴하고 있다. 일주일에 몇 번 밖에 없는 이 시간을 자율학습으로 보낸다거나 정신적, 감상적 두뇌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무엇을 위해 그림을 그리는지 잘 모르는 시간으로 되어버린다. 박람회를 위한 예산과 올바른 교육을 위한 제도개선의 예산은 함께 갈 수 없는 것일까.
동양화를 관람할 때에 왼쪽에서 오른쪽인지 오른쪽에서 왼쪽인지를 따지는 감상법보다 같은 그림을 보고 많은 것을 얘기할 수 있는 감상법을 가르쳐야 하겠고, 사실과 같이 베끼는 교육을 표현의 교육으로 활용할 것이 아닌 한 살짜리 손에서 크레파스로 그려지는 하얀 벽의 낙서가 그의 어머니에게는 하나의 걸작인 것처럼 창의성을 존중한 발상의 교육이 모두를 위한 교육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5.
르누아르¹의 앞에서 행복의 미술을 깨우치기엔 아직 이르다. 그리고, 아직도 우리는 식탁위에 걸린 액자의 그림으로 미술을 꿈꾼다. 오, 가까이 있지만 먼 미술관이여.




¹. 르누아르 피에르-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1841-1919)  관능과 환희의 인상주의 미술의 선구자. ‘비극적인 주제를 그리지 않은 유일한 화가’. “그림은 즐겁고 유쾌하고 예쁜 것이어야 한다.”라는 예술철학으로 5,000여 점이 넘는 유화작품을 남겼다. ’09. 5월 28일부터 9월 13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행복을 그린화가(PROMISE OF HAPPINESS)Renoir’ 작품전이 전시중이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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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장 양동훈 
  형태씨의 이번 글은 짜릿한 맛이 있네요. 껄껄. 

속칭 '우리나라'의 예술교육은, 
어떤 예술을 가르치는 것이건, 
음악이건 미술이건 문학이건 뭐건 간에, 
다 썩었어요. 자신있게 말할 수 있어요. 

예술을 무조건적인 틀 속에 집어넣어서 가르치고 예술 그 자체보다는 예술이 흘러온 역사를 중요하게 가르치는 것이 무슨 예술에 관한 교육입니까. 

바로크니 로코코니 하는 것이 정작 예술을 이해하는데 있어 뭐가 중요하며, 
저항문학이니 서정시니 뭐니 하는 분류가 정작 시를 이해하는데 뭐가 중요합니까. 

대체 어떤 세상에서 '시'를 '한 가지의 의미'로 해석해서 그 해석의 틀에 끼워넣는답니까. 
대체 어떤 세상에서 '소설'의 '상징'을 마음대로 해석해서 고정화시켜버린답니까. 

에휴. 2009-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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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병 윤대호 
  씁쓸하네요. 

그림 하나마다 자신의 '영혼'을 떼어 넣는다는 고흐의 말이 생각나네요.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림을 그리는 건지... 예술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대학에 
가기위한 하나의 필요도구로 전락해버린듯한 느낌마저 드네요. 
자신의 영혼에도 형식이 필요하고 틀이 필요한걸까요. 무엇보다 자유롭고 
거침없어야 하는것이 예술이 아닐까요 그런데 그런 예술마저도 입시를 위한 
공식에 입각해 틀에 끼워맞추는 것은 예술의 혼을 오히려 짓밟는 행위가 아닐까 
하는 물음이 드네요. 
우리나라 예체능 교육이 잘못되었다고 생각은 하였지만 실제로 경험해 
보지 못하였기에 막연히 추측만 하고 있었는데 이 글을 보니 실제 경험담을 토대로 
작성하셔서 그런지 가슴에 와닿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2009-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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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장 정근영 
  일단 가지로- 외치고. 

저는 정말 미술을 못 했습니다. 공부는 꽤나 잘하는 축이어서 어느 과목이든 나름 자신있게 시험에 임하고는 했지만, 미술만은 자신이 없었어요. 아, 물론 이건 실기평가에 해당되는 얘기고, 필기시험은 미술선생님이 복사해온 A4 용지 한장만 싸그리 외우면 되었기에 그닥 부담은 없었지만요. 학창시절 제 성적의 유일한 콤플렉스라고 하는 편이 빠르겠네요. 낄낄 

전반적인 교육현실이 문제긴 하지만, 그게 '예체능' 계열이라면 더더욱 할 말이 없어지고 맙니다. 중고등학교때 축구부나 야구부, 또는 '어떠한 운동부'에서 운동선수의 꿈을 키우는 것은 나중에 굶어죽기 딱 좋은 꼴이고, 음악, 미술에 학창시절을 할애한다는 것은 '있는 집 자식들'이나, 가뭄에 콩 나듯 보이는 몇몇 '천재들'이 아니면 꿈도 못 꿀 일이지요. 예술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말인데, 위에 동훈님이 말씀하셨든 '문학'도 똑같이 해당되는 말인 듯 해요. 정작 그렇게 열심히 이 시와 소설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이며, 밑줄 친 단어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공부했으면서도 문학의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했는데, 책읽기의 즐거움을 깨달아가고 있는 요즘음에야 비로소 그들의 작품이 얼마나 가치있는 것인지를 알게된 것처럼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존 키팅이 셰익스피어의 시가 바이런의 시보다 우수한 이유를 설명하다가 갑자기 낭랑한 목소리로 시를 읊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교사의 어려움을 알지도 못한 주제에 할 말이 아니긴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런 선생님이 좀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네요. 2009-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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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장 김형태 
  동훈문학작품도 일종의 창작ㆍ예술 활동이기에 큰 범주안에서 같은 맥락인 것 같습니다. 정말 다시 생각해봐야 할 문제는 마찬가지로 국어시간에 배우고 시험을 보는 내용들도 어느 예체능과 별반 다를바 없이 목적암기식으로 간다는 것이지요. 아무리 마음을 표현할 단어들이 제한되어있다 쳐도 기존의 정형화된 것들을 계속 이어가고 있는 우리의 국어책과 시험문제들이란 공식에 입각한 미술의 것들과 다를바 없는 것 같습니다. 더 어처구니 없는 것은 같은 시에대한 같은 해석이 교육과정의 변화와 무관하게 시종일관 몇년째 같은 방법으로 되풀이 된다는 것이겠죠. 
이도 오히려 초등학교 교육이 개방적ㆍ수용적인 것 같습니다. 읽기, 말하기ㆍ듣기, 쓰기 라는 일괄될 수 없는 것들을 교육과정이 학년이 높아질 수록 무의미해지고 각 과목간 차이를 느낄 수 없어집니다. 
'어린이의 마음으로 돌아가라' 이것이 예술, 문학의 교육에 있어서는 선진화된 교육이 아닐까 싶습니다. 

대호'도대체 무엇을 위해 그림을 그리는가' 는 '무엇을 위해 공부를 하는가'와 같은 답이 나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완성에 의미를 담아야 하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과정은 어떻게 담아내야하는 것일까요. 모른척 지나 결론에 다다르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요. 
실제로 저는 입시미술을 겪을때의 행복이란 '높은 점수'밖에 없었습니다만, 입시가 끝나고 홀로 본인만의 그림을 그릴때에 정말 행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곧 미술이자 예술이겠죠. '이토록 즐거운 일을 나는 왜 무의미하게 보내왔던가'라는 의문이 저를 넘어 르누아르의 미술관앞에서의 괴로움이 위의 텍스트로 현 교육에 까지 나오게 된 것 같습니다.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근영가끔 선생님이 되고 싶은 욕망이 생긴답니다. 그러면서도 '내가 선생님이 되었을때 정말 내가 꿈꾸던 미래를 만들 수 있을까'라는 의문도 들기도 해요. 광범위한 우리의 초.중.고의 교육이 단지 입시를 위해 가고 있는 것이라면, 이를 묵인하고 그저 그런대로 가르치는 교육도 문제가 있겠습니다만 더는 얘기해봤자 지루한 '우리 사회의 문제점' 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대학대학대학. 무슨 사랑사랑사랑도 아니고 대학을 그렇게나 '대학'한답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에게서 나오는 그림이 가장 아름답고 순수하다 얘기하지만, 이미 '초록태양'은 외면되고 있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곳이 아닐까 싶습니다. 2009-07-06
091330
  

 

병장 양동훈 
  형태 

이 빌어먹을 놈의 세상은 모든걸 점수화하는 세상이 되어버렸으니까요. 
무엇이든 간에, 그것을 '수치로' 평가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식의 사회. 
어른을 평가할 때는 
'무슨 대학이면 몇점', '무슨 직업이면 몇점', '재산이 얼마 있으면 몇점', '어떻게 생겼으면 몇점', '연봉이 얼마면 몇점' 심지어 '부모님 재산이 얼마 있으면 몇점', '부모님 학력이 얼마 이상이면 몇점', '부모님 직업이 뭐면 몇점' 

학생들을 평가할 때는 오로지 
'시험점수 몇점', '시키는 대로 해석해서 문제만 잘 풀면 땡' 

글에 대해서도 
'글의 요지를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잡으면 몇점, 저렇게 저렇게 저렇게 잡으면 몇점' 
'몇 자를 넘어가면 몇점 감점, 몇 자가 안되면 몇점 감점' 
'맞춤법이 하나 틀릴 때마다 몇점 감점.' 

이런 쉬펄.. 2009-07-06
110913
  

 

상병 진수유 
  잘 읽었어요. 대학에 들어와서야 예술이 뭔지, 미술이 뭔지 조금 알겠더군요. 특히 미술은! 2009-07-06
153216
  

 

상병 진수유 
  아, 르누와르전 혹시 가 보셨어요 이번 8월 쯤에 월급 털어서 한 번 가족들과 가볼까 생각중이거든요! 2009-07-06
153342
  

 

병장 김형태 
  수유네, 지난 6월 초에 다녀왔어요.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보기힘든 미술전이라고하니 다녀오시면 좋을 듯 해요. 가격은 만 오백원이니 월급을 털 필요까지는 없겠군요.(크크) 한가지 더 정보를 알려드리자면, 덕수궁미술관에서 페르난도 보테로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얼핏들은 정포에 의하면 9월까지라더군요. 덕수궁에 가시는 김에 르누아르, 보테로 콤비로 다녀오셔도 좋을 듯 하지만, 아마 힘들겠죠 전 이번주말에 보테로전을 볼 예정이랍니다. 2009-07-06
155132
  

 

상병 진수유 
  형태님, 감사합니다! 보테로는 처음 듣는 분이군요. 오옹, 만오백원이면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싸네요 예전에 달리 전이 얼마였더라 더 비쌌던 것 같은데. 끙. 보테로도 좀 더 알아보고 2차로 가든지 해야겠어요, 아마 어머니 아버지는 그 때 쯤 지겨워하실 수 있으니.. 2차는 동생하고만 가야겠네요. 미술에 대해 무지하지만 그냥 미술관에 동생과 간다는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데요 이것에 대한 모든 비판에도 굴하지 않고 기뻐할 수 있는 그러한 행복감! 다시 한 번 감사해요. 2009-07-06
160717
  

 

병장 김형태 
  수유  시립미술관에서 전시중인 르누아르전은, 굉장히 벅찹니다. 당시 네시간에 걸쳐 관람을 했음에도(중간에 몇번 쉬었어요), 시간이 모자란다는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그런상태에서 2차로 보테로를 추천해드리자니 잔혹할 것만 같군요. 다시 회부합니다.(낄낄) 미술관 2층의 천경자(맞나요)갤러리, 1층의 오감도(지금은 없겠습니다)를 제외하고는 모두 르누아르 였어요. 게다가 전시되어있는 그림도 여느때보다 많더군요. 
야외광장에는 애니메이션 습격사건인가 뭔가가 있어서 만화캐릭터들이 막 나와있더군요. 좋은시간이 되실거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