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마음이 시끄러운 날이 있다. 바로 오늘 같은 날이다. 버겁기 그지없는 회사일에 파묻혀서 허우적 대기를 한참, 문득 시계를 보니 어느새 자정이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의 불을 끄고 터벅거리며 나온다. 채 끝내지 못한 회사일이 앵앵 거리는 모기 소리마냥 머리 속을 헤맨다. 관자놀이를 슬쩍 문질러보았으나 영 신통치않다. 선릉역 사거리에서 운 좋게 빈 택시와 조우한다. 도착지를 전하는 내 목소리에 얼마간의 피로함이 묻은 탓일까, 택시기사님은 별 다른 말없이 악셀을 밟는다. 말라 비틀어진 무말랭이 같은 모양새를 하고는 뒷좌석에 몸을 푹 파묻는다. 의미없이 창밖으로 놓아두었던 시선을 거두어다가 스마트폰에다 갖다 놓는다. 뉴스를 뒤적여도 영 눈에 들어오는게 없어 카카오톡을 켜본다. 거기서 당신의 이름을 발견한다. 어쩐지 위쪽에 올려진 당신의 이름 옆에는 생일 이모티콘이 반짝이고 있다. 아, 당신의 생일이 바로 오늘인 모양이다.
내가 맺고있는 인간관계가 모두 내 생활영역 안에 넉넉히 들어와있던 때가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이 그랬다. 가족과 친구들 모두 내 생활과 맞닿아 있었다. 등교를 하면 거기엔 당연스레 내 친구들이 있었고, 집으로 돌아오면 또 당연스레 가족들과 저녁을 함께 했다. 구태여 연락을 하고 만나려 하지 않아도 매일의 얼굴을 마주했고, 그 일상들을 자연스레 공유하게 되었다. 공부를 하고, 점심시간에 짬짬이 축구를 하고, 또 가끔은 야자를 째고 노래방에나 가는, 그런 내 생활들을 모두 당신들과 함께 했다.
처음으로 그러한 패턴이 틀어진 것은 대학교 진학 이후였다. 매일을 함께하던 고등학교 친구들은 각자 대학교 합격증을 손에 들고 전국 팔도로 흩어지게 되었고, 우리는 더이상 일상을 자연스레 공유하지 못하게 되었다. 만날 이유를 찾아 약속을 잡고서야 당신들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습관처럼 당신들과 내 일상을 나누려다가 머뭇거린다. 당신들과 내 일상은 이제 예전처럼 자연스럽게 공유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다. 그렇게 얼굴을 마주 할 기회 마저도 사실 일 년에 채 몇 번이 되지 못했다. 각자가 서로 일상을 자연스레 공유하는 다른 친구들이 생겼고, 우리의 일상은 멀어져감을 느꼈다.
군대를 다녀오고, 졸업을 하고, 회사에 취직을 하는 매 시점마다 이러한 패턴은 계속해서 반복되었다. 여러 지인들이 내 일상에 들어와 잠시간 머물다가 또 스쳐지나간다. 자연스레 함께 하던 친구들은 어느새 일부러 손을 뻗지 않으면 닿지 않는 곳에 있었다. 송년회니 동창회니 여러 이유들을 만들어 내어 얼굴을 맞대지만 어째 매번 느끼는 것은 점점 낯설어지는 당신의 나이든 얼굴이었다. 내 기억 속의 당신은 아직까지 소년에 머물러 있는데 어째서 당신의 얼굴에선 넉넉한 나이가 느껴지는지, 또 배는 언제 그렇게 나왔는지 모를 일이다.
생일 이모티콘과 나란히 놓여진 당신의 이름을 눌러 당신과의 대화창을 켠다. 선물하기 메뉴를 들어가 커피 기프티콘을 하나 골라본다. 생일 축하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당신에게 조그만 마음을 전한다. 오랜만이라고, 어떻게 지내는지 하는 말들을 뒤에 덧붙인다. 고개를 드니 택시는 사당을 지나고 있다. 이 늦은 시간에도 사람들은 북적이고 있다. 창문이 닫혀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끌벅적한 소리가 생생히 들리는 듯 하다. 당신에게서 답장이 도착했다. 나만 당신을 그리고 있던 건 아니었는지 당신도 반가움을 전해왔다. 몇 마디 더 하잘 것 없는 신변잡기를 나누다가 우리는 이내 약속을 잡는다. 이번 주 금요일, 저녁에, 사당에서. 그 쯤에서 나는 스마트폰을 내려놓는다. 나는 당신과 다시 얼굴을 맞대고 만날 것이다. 일상을 함께 하던 어릴적 이야기도 나누고 궁금하던 당신의 근황도 물을 것이다.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를 아쉬워해봐야 무용하다. 일년에 한 번 쯤은 당신에게 손을 내밀 수 있는 생일이라는 좋은 핑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