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단순 개발만 하고 기능구현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을 해야 할 시기가 다가온다.”

“사람들 관리가 될 수도 있고 어느 한 분야에 전문가가 되어야 할 수도 있고, 선택은 본인의 몫”

(from https://taetaetae.github.io/2019/07/07/review-first-half-2019/)


직장 생활을 시작한 이래로 꽤 오랫동안 해오던 생각들이다. 개발자에게 가장 기본이 되는 일은 “의도대로 동작하는 코드를 작성"하는 일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그 이상의 플러스 알파를 해낼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생각을 처음 했던 것은 개발자로써 직장 생활을 막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회사에서 마주한 코드들은 내가 그동안 아마추어로써 만져오던 코드들과 완전히 궤를 달리할 정도로 수준이 달랐다. 나름 그래도 대학교 시절 코드 좀 쓴다고 자부했던 내 자존감은 앓는 이처럼 흔들거리고 있었다. 그 무렵 나는 하루에도 몇 번 씩이나 회사에서 내개 요구하는 기대치와 현재 나의 레벨에 대해서 생각했다. 나는 과연 내가 받는 월급의 값어치를 다하고 있는 걸까, 신입사원에게 실수는 어디까지 용납될까, 6개월 정도면 신입사원 딱지를 떼고 오롯이 한 사람의 몫을 할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로 나를 채찍질했다. 그리곤 퇴근시간이면 항상 내게 자문했다. “나느 오늘 일급 만큼의 일을 했는가? 만약 내가 나를 고용했다면, 오늘의 내게 이 정도의 돈을 줄 수 있나?”

첫 번째 이직을 하던 즈음에는 고민의 깊이가 한층 더 깊어졌다. 여기서 나는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가, 면접 때 내게 질문을 던지던 CTO 님은 내게 어떤 기대치를 가지고 있으며, 나는 거기서 어디까지 충족하고 있을까. 이러한 고민들은 때론 비타민이 되기도, 또 때론 내 자존감을 끌어내리기도 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내가 만족시켜야 하는 기대치와 나의 가치에 대해 생각했다.

조직에 필요한 사람의 종류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누라고 한다면 이렇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에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 그리고 실제로 그 곳으로 다다르기 위해 페달을 밟는 사람. 전자는 일반적으로 “장"의 지위를 가지고 있고, 후자는 실무자 정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이 실무자에서 시작하여 대리, 과장, 차장 등의 직급의 계단을 하나씩 올라 점점 더 중요한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권한과 책임을 짊어지게 된다. 권한과 책임, 그것이 점차 높아지는 연봉의 무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입 딱지를 떼면 한 사람 분의 일을 오롯이 해낸다. 거기에 2~3년 정도의 경험이 붙으면 가히 베테랑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속도와 효율이 올라간다. 하지만 실무 관점에서의 이러한 업무 효율이 계속해서 선형적으로 증가하지는 않는다. 업무의 성격마다 다르겠지만 연차가 붙을 수록 실무 역량 증가의 기울기는 점차 감소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회사가 특정 연차 이후의 직원들을 대상으로 연봉을 동결시키지는 않는다. 매년 더 높은 연봉을 주고 더 높은 직급을 달아주는 것은 단순히 실무를 효율적으로 진행하는 것, 그 이상의 플러스 알파를 개인에게 기대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플러스 알파가 무엇인지는 회사, 직군, 조직에 따라 모두 다를 것이다. 심지어는 같은 조직 내 개인 별로도 모두 다를 수있다. 각자 자신만의 무기를 갈고 닦아서 회사 내 자신의 존재 이유를 증명해내야 한다.

이 무기를 계속해서 찾아내고, 또 갈고 닦지 않으면 지금껏 평범하게 영위하던 일상을 어느 순간에는 손가락 사이 모래처럼 잃을 수도 있다는 다소의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일상을 지속시키기 위한 대가가 이다지도 작지 않다는 것이 사회 초년병 시절에는 생경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동안 적지 않게 먹은 직장 생활 짬밥 덕분일까, 이제는 이러한 종류의 일상의 투쟁이 뭐 크게 이상하지도 않다.

지금 재가 갈고 닦고 있는 무기는 기술 도메인이다. 단순히 읽기 좋은, 그리고 의도대로 동작하는 코드를 깔끔하게 잘 뽑아낸다 정도는 이 정도의 연차에서는 기본이어야 한다. 그 위에 특정 기술 도메인에 대한 지식과 경험들을 쌓아놓는 것이 지금 이 시점에서 내가 가져볼만 한 무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 도메인을 나는 클라우드와 모니터링으로 잡았고, 그에 따라서 회사도 지금 다니고 있는 곳으로 이직하게 되었다.

또 다른 다음 무기는 무엇이 될 수 있을지 계속해서 고민 중이다. 단순히 생각하면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 중에 필요한 것들을 찾아보는 방법도 있겠지만, 이렇게 단점을 채우기 보다는 장점을 갈고 닦는 방향이 더 정답에 가까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 고민에 대한 나름의 답을 내년 정도에는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고 희망해본다.